희생번트의 치명적인 약점, ‘실패’
희생번트는 그동안 야구인들 사이에서 큰 논쟁거리였다. 희생번트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희생번트가 오히려 기대 득점과 득점 확률이 낮춘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희생번트를 찬성하는 측은 기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가적인 요인을 근거로 든다.
무사 1루에서의 번트가 통계적으로 비효율적인 것은 사실이다. kbreport에 의하면 2013년 기준 무사 1루에서의 기대 득점은 0.9점, 1사 2루에서의 기대 득점은 0.8점에 해당했고, baseball in play에서 공개한 득점 확률은 각각 무사 1루 42.6%, 1사 2루 42.4%에 해당했다.
다만 큰 차이는 아니기 때문에 희생번트를 찬성하는 쪽의 의견도 어느 정도는 설득력 있게 느껴질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희생번트의 장점’이라는 것이 실존하기만 한다면, 0.1점의 기대 득점이나 0.2%의 득점 확률 정도는 손해를 봐도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논쟁은 어디까지나 무사 1루에서의 희생번트가 1사 2루를 보장한다는 전제 하에 성립한다. 현실은 다르다. 무사 1루에서의 희생번트는 절대 1사 2루를 보장하지 않는다.
2023년 kbo 정규시즌의 희생번트 성공률은 60%에 불과했다. 기간을 10년으로 넓혀 2014년 이후부터 계산해도 희생번트의 성공률은 62.1%에 그친다.
그러니까 무사 1루에서 번트를 댈 경우 1사 2루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약 40%의 확률로 1사 1루, 혹은 그 이하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희생번트의 손익계산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성공률을 고려했을 때 무사 1루에서 희생번트 시 실질적인 득점 확률은 42.6%에서 36.6%로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며, 마찬가지로 기대 득점 역시 0.9점에서 0.708점으로 0.2점가량 크게 줄어들게 된다. 즉 번트 5번을 참으면 1점을 버는 것과 다름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어디까지나 희생번트 실패가 반드시 1사 1루 상황을 만든다고 가정한 희망적인 계산의 결과물이다. 실제로 희생번트를 실패할 경우에는 병살타라는 더 끔찍한 결과도 충분히 가능하다.
무사 2루, 혹은 1,2루에서의 희생번트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고려해야한다. 이 경우는 무사 1루와는 다르게 성공했을 때 득점 확률이나 기대 득점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대신 실패할 경우 득점 확률 및 기대 득점의 감소가 무사 1루보다 더 심하다.
27개 밖에 없는 아웃카운트라는 판돈을 상대에게 헌납하며 성공할 경우에는 팀의 득점 확률과 기대 득점을 오히려 줄이는데, 심지어 성공할 확률이 60%밖에 되지 않는 작전,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시도할 이유가 많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희생번트에 6% 이상의 득점 확률과 0.2점 이상의 득점 가치를 만회할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여러분의 자유이다. 하지만 통계가 쉽고 빠른 길을 알려주는데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