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한국 야구의 영웅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 TOP 50-1(50~31위)

마드리드의 거인 2024. 6. 10. 10:29

*2023년까지의 기록만 반영했습니다.
*PED 사용이 적발된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재일교포의 경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밝힌 인물을 포함했습니다.
*자료의 부족으로 누락된 인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의 주관을 많이 반영했습니다.

 

50위 장원삼

생년월일: 1983년 6월 9일
투타: 좌투좌타
주요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삼성 왕조의 선발진 한 축을 든든하게 책임졌던 선수이며, 삼성에 입단하기 전에는 현대 유니콘스와 우리 히어로즈에서도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구속은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특출난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곧잘 잡아내곤 했다. 유독 짝수해에 성적이 좋은 징크스가 있었다.
 
장원삼은 2006년 현대에서 데뷔했고, 그 해 탈삼진 4위, ERA 5위에 오르며 신인답지 않은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우리 히어로즈로 선수단이 승계된 2008년에도 2.85의 ERA와 126탈삼진을 기록하며 또 다시 탈삼진 4위, ERA 5위에 올랐다.
 
이후 구단의 재정난으로 2010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고 그 해 13승을 거뒀으며, 이듬해 정규시즌에는 다소 아쉬웠지만 아시아시리즈 MVP에 올랐다. 2012년에는 다승왕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행운을 거머쥐기도 했다.
 
장원삼은 2015년까지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이어갔지만, 점차 구위가 떨어지고 세부 지표는 나빠졌다. 삼성을 떠난 뒤 2019년 LG, 2020년 롯데를 거치며 재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반등을 이뤄내지 못하고 2020년을 끝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장원삼은 대표팀에도 여러 차례 선발됐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각 1차례, WBC에 2차례 선발된 바 있고,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중국과 네덜란드를 상대로 무실점 호투를 기록하며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공헌하기도 했다.
 
주요 시즌: 2006년(KBO) 29경기 183.1이닝 12승 ERA 2.85 142탈삼진
 

49위 성준

생년월일: 1962년 9월 25일
투타: 좌투좌타
주요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0년대 말~90년대 초 삼성 선발진의 한 축을 지킨 좌완투수로 구속은 느렸지만 타자와의 수 싸움에 뛰어났다. 인터벌이 매우 길어 밈이 됐으며, 최근의 야구팬들도 알 정도로 유명해졌다.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압도적인 활약을 펼친 시즌은 없었지만, 4차례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13시즌이나 삼성의 투수진 한 자리를 지켰다. 3차례 2점대 ERA를 기록했으며, 1991년에는 2.07의 ERA로 리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1999년 롯데에서의 1년을 끝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주요 시즌: 1986년(KBO) 29경기 149이닝 15승 2세이브 ERA 2.36 60탈삼진
 

48위 신용균

생년월일: 1938년 10월 13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크라운 맥주
 

1960년대 한국 야구를 주름잡은 언더핸드 투수로 국내 무대에 싱커를 처음으로 알린 선수로 유명하다. 또한 해방 이후 첫 야구 한일전 승리 및 아시아 대회 첫 우승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신용균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사회인 야구 무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63년 재일동포팀을 통해 방한하면서 그의 기량이 국내 야구인들에게 알려졌고, 그는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리고 그 해 열린 제 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신용균은 일본과의 2경기 동안 2실점 완투승과 완봉승을 거두며 대한민국에게 우승을 안겼고, 본인은 대회 MVP로 선정됐다. 해방 후 첫 야구 한일전 승리이자 첫 아시아 대회 우승의 쾌거였다.
 
이후 국내 실업 무대에서 활약을 이어간 신용균은 1964년 역대 최다인 24승과 함께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1966년에도 다승 2위, 평균자책점 1위, 최우수 선수상 등을 수상했다고 전해진다.
 
주요 시즌: 미상
 

47위 김현욱


생년월일: 1970년 6월 6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전성기를 보냈던 잠수함 투수로 구원투수임에도 매년 100이닝 가량을 던질 정도로 이닝 소화능력이 좋았다. KBO 리그 역대 유일한 단일 시즌 순수 구원 20승이라는 대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데뷔는 1993년 삼성에서 했지만,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것은 쌍방울에서부터였다. 1996년 무려 99.1이닝을 소화하며 2점대 ERA를 기록했고, 1997년에는 다승 및 ERA 1위, 그리고 탈삼진 4위에 오르며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선보였다.
 
1998년에도 김현욱은 규정 이닝 3점대 ERA와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다. 이 3년 동안 선발 등판한 경기는 단 1경기였으니, 그의 이닝 소화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달리 말하면 그가 불펜에서 얼마나 혹사를 당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듬해 그는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다.
 
그리고 삼성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혹사를 당했다. 삼성에서의 첫 5년 동안 그는 93이닝-109이닝-95.2이닝-76.2이닝-85.2이닝을 던졌고, 2점대 ERA 2번, 3점대 ERA 2번, 10승 1차례, 10홀드 이상을 3차례 기록했다. 선발 등판은 역시나 단 1차례도 없었다.
 
그리고 삼성에서의 6번째 시즌 그는 26이닝 ERA 5.88에 그쳤고, 결국 그 해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어야했다. 혹사를 견디고 이런 훌륭한 커리어를 보낸 그의 내구성이 감탄스러우며, 혹사가 없었다면 그가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요 시즌: 1997년(KBO) 70경기 157.2이닝 20승 6세이브 ERA 1.88 135탈삼진
 

46위 조규제


생년월일: 1967년 10월 7일
투타: 좌투좌타
주요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쌍방울 레이더스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당대에는 흔치않게 시속 140km 중반의 강속구를 뿌리던 좌완 파이어볼러였다. 주로 팀의 뒷문을 책임졌으며 KBO 통산 153세이브를 기록해 이 부문 역대 10위에 올라있다.
 
조규제는 1991년 데뷔 첫 해부터 세이브 1위, ERA 2위, 탈삼진 5위 등 다양한 부문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1993년에는 88.2이닝 ERA 1.42, 23세이브, 1994년에는 98이닝 ERA 2.39 24세이브 등을 기록하며 꾸준하게 쌍방울의 뒷문을 지켰다.
 
1995년에는 5점대 ERA로 다소 부진했지만, 1996년에는 1점대 ERA와 20세이브, 1997년에는 2점대 ERA와 28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활약을 이어나갔다. 이후 쌍방울이 재정난을 겪으면서 그는 현대로 트레이드 됐다.
 
현대 이적 이후 그의 커리어는 그리 잘 풀리지 않았고, 본인이 가장 선호하던 마무리가 아닌 다른 보직을 떠돌아야했다. 그 후로도 SK와 KIA 등을 거친 조규제는 2005년을 끝으로 15년의 프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주요 시즌: 1991년(KBO) 49경기 142.1이닝 9승 27세이브 ERA 1.64 133탈삼진
 

45위 김영덕


생년월일: 1936년 1월 27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한일은행

 
신용균과 함께 1960년대 한국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실업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하나로 꼽힌다. 사이드암 투수였으며, 국내 무대에 처음으로 슬라이더를 알린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1956년 난카이 호크스(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입단해 NPB 무대를 밟았다. 1959년 1군에 데뷔했고, 4년 동안 158.2이닝 7승, ERA 3.57, 75탈삼진 등의 기록을 남겼고 재팬시리즈 우승 또한 경험했다.
 
이후 1964년 국내로 들어와 해운공사에 입단한 그는 그 해 바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하며 실업야구 무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해당 시즌 그의 평균자책점은 0.32로 실업 야구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고 전해진다.
 
1967년에도 0점대 평균자책점과 함께 17승 1패로 실업 무대 역대 최고 승률(0.944)을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10연승과 54이닝 연속 무실점 등의 믿기 힘든 수준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967년과 1968년 2년 연속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것 역시도 빼놓을 수 없다.
 
이후 한일은행의 선수 겸 감독직 등을 거친 김영덕은 지도자로도 국가대표팀과 OB, 삼성, 빙그레 등을 맡아 아시아선수권 우승과 KBO 2회 우승, KBO 통산 최고 승률 등을 남긴 바 있다.
 
주요 시즌: 1959년(NPB) 43경기 102이닝 6승 ERA 3.09 54탈삼진
 

44위 김원형

 
생년월일: 1972년 7월 5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당대 최고의 커브를 구사하던 선수로 KBO 통산 2171이닝을 투구하고 134승을 거둬 이닝 5위, 다승 9위에 올라있다. 쌍방울의 1군 9시즌을 모두 함께한 에이스였고, SK에서도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1991년 쌍방울에서 데뷔했고, 3년차이던 1993년 2.93의 ERA와 11승, 그리고 역대 최연소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로도 꾸준히 쌍방울 투수진의 한 축을 지켰고 1997년과 1998년에도 2년 연속으로 2점대 ERA를 기록했다.
 
쌍방울의 해체 이후 선수단을 이어받은 SK에서도 30대 중반까지 롱런하며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05년에는 선발로 활약하면서 14승을 거뒀고, 2008년에는 불펜으로 뛰면서도 승운이 따라 12승을 기록했다. 2010년에 마지막으로 1군에 등판했고 2011년 은퇴를 선언했다.
 
주요 시즌: 1998년(KBO) 51경기 150이닝 12승 13세이브 ERA 2.52 109탈삼진
 

43위 황규봉

 
생년월일: 1953년 4월 24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0년대 삼성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한 선수 중 하나이며, 프로 야구가 출범하기 이전에는 실업무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대학 시절에도 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드러냈으며, 심각한 부상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인간승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황규봉은 고려대 재학시절 국가대표로 참가한 대회 도중 숙소에 발생한 화재를 피하기 위해 3층에서 뛰어내렸다가 큰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으로 오랜 기간 투병했으나 재기에 성공했고, 실업야구팀 한국화장품 야구단의 창단 멤버이자 에이스로 활약했다.
 
KBO 원년 개막 당시 그는 만 28세의 늦은 나이었으나 출장 및 세이브 1위, 다승 2위, 이닝 3위, ERA 및 탈삼진 4위 등 다양한 기록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1984년과 1985년에도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기도 했으며, 1986년을 끝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주요 시즌: 1982년(KBO) 48경기 222.1이닝 15승 11세이브 ERA 2.47 99탈삼진
 

42위 이선희


생년월일: 1955년 2월 14일
투타: 좌투좌타
주요 소속팀: 농협 야구단

 
1970년대 말~80년대 초 국내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하나이다. 야구팬들에게는 KBO 원년 극적인 만루홈런 2방을 허용한 비운의 인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실업 야구 무대를 제패하고 국제대회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인 명투수였다.
 
1973년 농협 야구단 소속으로 실업 야구계에 데뷔했으며 데뷔 첫 해부터 올스타에 선정됐다. 1977년 니카라과 대륙간컵에서는 대회 MVP에 오르며 한국 야구 역사상 첫 세계 대회 우승의 쾌거를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실업야구 무대에서는 2년 연속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으며, 이후로도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해 맹활약을 선보였다. 특히 일본전 무패를 기록해 ‘일본 킬러’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으며, 해외팀들 역시 그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KBO 원년, 그는 개막전부터 이종도에게 끝내기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아쉽게 출발했으나 이후 15승을 거둬 삼성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30이닝을 넘게 소화하며 2점대 ERA로 분전했지만, 김유동에게 또 만루홈런을 허용해 패배의 아픔을 삼켜야했다.
 
어린나이부터 실업무대와 각종 국제대회에서 혹사당한 탓에 이선희의 전성기는 여기까지였고, 1987년 만 32세의 젊은 나이로 유니폼을 벗게 된다. 만약 KBO 리그가 더 일찍 생겼더라면 이선희는 훨씬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주요 시즌: 1982년(KBO) 38경기 167이닝 15승 1세이브 ERA 2.91 73탈삼진
 

41위 진필중

 
생년월일: 1972년 10월 13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두산 베어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바탕으로 뒷문을 걸어 잠그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KBO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 중 하나였다. KBO 통산 191세이브를 기록해 해당 부문 역대 7위에 올라있다.
 
1995년 OB에서 데뷔했으며, 2년차에는 13승을 거두기도 하는 등 커리어 초반에는 주로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마무리 투수로 전향했고, 그 해 19세이브를 거둠과 동시에 규정이닝을 채우며 ERA 4위에 올랐다.
 
1999년에는 16승과 36세이브를 거두며 세이브 포인트(구원승+세이브) 역대 1위 기록을 세우고 구원왕에 올랐다. 이듬해에도 5승과 42세이브를 기록하며 2년 연속 구원왕에 올랐고, 2002년까지 3년 연속 세이브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불펜 투수임에도 너무 많은 이닝을 던진 탓인지 이후 그의 구위는 빠르게 약해졌다. KIA와 LG 시절을 거치면서 점차 세이브 숫자가 줄고 세부 지표가 나빠졌으며, 2008년 우리 히어로즈 소속으로 재기를 시도했으나 1군 등판을 하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
 
주요 시즌: 1999년(KBO) 73경기 114이닝 16승 36세이브 ERA 2.37 114탈삼진
 

40위 정명원


생년월일: 1966년 6월 14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
 

빠른 공을 바탕으로 태평양의 뒷문을 지켰던 선수로 마무리로 주로 나섰지만 선발로도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KBO 리그 최초의 단일 시즌 40세이브 달성자이고, 1000이닝 이상 투구한 선수 중 KBO 통산 ERA 3위이며 그의 위에는 선동열과 최동원만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데뷔 첫 해인 1989년부터 11승과 6세이브를 거두고 ERA 4위, 세이브 5위에 오르며 팀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부진했지만, 1991년 12승과 14세이브를 거두고 ERA 4위, 세이브 3위로 제 몫을 다했다.
 
이후 부상으로 2시즌 가량을 거의 날렸지만, 1994년 마무리 보직을 맡아 40세이브를 거두고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재기에 성공하고 전성기를 맞았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매년 100이닝 가량을 소화하며 1점대 ERA를 기록했고, 세이브 1위도 2번을 차지했다.
 
1996년에는 한국시리즈 사상 첫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던 정명원은, 1998년에는 다시 선발로 돌아가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르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정명원은 2년 후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등판을 끝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주요 시즌: 1994년(KBO) 50경기 105.2이닝 4승 40세이브 ERA 1.36 74탈삼진
 

39위 주형광


생년월일: 1976년 3월 1일
투타: 좌투좌타
주요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0년대 KBO 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하나로 뛰어난 제구력과 예리한 슬라이더를 바탕으로 많은 탈삼진을 잡아냈다. 또한 조기 입학과 고졸 데뷔로 인해 KBO 리그의 투수 부문 여러 최연소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1994년 고졸 데뷔 첫 해부터 3.04의 ERA와 11승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등장했고, 2년차에는 200.1이닝을 투구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3년차에는 당시 기준 탈삼진 역대 2위 기록을 세우고 다승 및 탈삼진 타이틀을 석권하며 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이후 현역 입대를 시도했으나 건강 이상으로 의병 제대했고, 좋지 않은 몸 상태로 팀에 복귀하여 무리한 것이 결국 그의 커리어를 망치고 말았다. 1998년과 1999년에도 2년 연속 3점대 ERA와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2000년 149.2이닝을 투구하며 3.49의 ERA를 기록한 뒤 주형광은 다시는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보직도 선발에서 계투로 강등됐으며, 결국 2007년 만 31세의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커리어를 마무리해야만 했다.
 
주요 시즌: 1996년(KBO) 30경기 216.2이닝 18승 1세이브 ERA 3.36 221탈삼진
 

38위 권영호

 
생년월일: 1954년 1월 23일
투타: 좌투좌타
주요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KBO 역대 최초로 통산 100세이브를 달성한 선수로 KBO 리그 전문 마무리 투수의 시초로 잘 알려져 있다.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피칭으로 타자를 잘 요리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업 야구 시절 한국화장품과 육군 경리단 등에서 활동했으며, 1980년 실업 야구 코리안시리즈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다고 알려져 있다. 프로야구가 창설되기 전인 1981년, 만 27세까지 실업 야구 무대에서 활약했다.
 
1982년 만 28세의 나이로 KBO에 데뷔한 권영호는 첫 시즌부터 다승 및 ERA 2위에 오르며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1983년에는 7세이브를 기록하며 리그 2위에 올랐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85년부터는 전문 마무리 투수로 변신한다.
 
마무리 투수로 전업한 뒤에도 많은 이닝을 던진 권영호는 세이브 1위 1차례, 세이브 2위에 3차례 더 올랐다. 1989년 19세이브를 거두며 정확하게 통산 100세이브를 완성했고, 그 해를 끝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주요 시즌: 1982년(KBO) 32경기 178.2이닝 15승 2세이브 ERA 2.37 72탈삼진
 

37위 박철순


생년월일: 1954년 3월 12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OB 베어스
 

‘단일 시즌 22연승’이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세우며 1982년 1년만큼은 아주 화려하게 불태운 선수이다. 그러나 하술할 최동원 폭행을 비롯한 한국 야구계 여러 어두운 사건들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박철순은 고교시절 및 연세대 1학년 때까지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나, 군복무 도중 명포수 출신인 선임 이종도와 고교 최고의 투수였던 후임 남우식의 도움을 받아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그러나 연대에 복학한 1979년, 후배 최동원의 허리를 야구 배트로 수차례 구타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사실상 국내 야구계에서 퇴출됐다. 운동부 내의 폭력이 만연했을 당시의 기준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박철순의 죄질이 얼마나 나빴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후 박철순이 도피처로 선택한 곳은 미국 마이너리그였다.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에 입단한 박철순은 1981년 더블A 승격에 성공했으나, 더블A에서는 5.77의 ERA를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었고, 1982년 KBO 리그 창설에 맞춰 국내 복귀를 선택한다.
 
세계선수권으로 국가대표들이 전부 차출된 원년의 KBO 리그에서 ‘유학파’ 박철순을 막을 선수는 없었다. 박철순은 다승과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따내고 MVP까지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이 해에 너무 무리했는지 그 후 박철순은 강력함을 잃고 평범한 선수가 됐다. 1982년 이후 단 한 차례도 규정 이닝을 채우거나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지 못한 채 부상과 복귀만을 반복했고, 결국 1996년을 끝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1982년 1년만큼은 충분히 뛰어났으나, 상술한대로 그 이후의 활약상이 미미하여 명성에 비해 다소 낮게 느껴질 수 있는 현재의 순위에 배치했다. 그리고 최동원에게 자행했던 심각한 폭행과 그 외의 여러 사건에 대해서 박철순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주요 시즌: 1982년(KBO) 36경기 224.2이닝 24승 7세이브 ERA 1.84 108탈삼진
 

36위 박충식


생년월일: 1970년 9월 3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0년대 삼성 선발진의 한 축을 지켰던 잠수함 투수이다. 투구폼에 비해서는 빠르다고 할 수 있는 시속 140km대의 패스트볼과 날카로운 싱커 및 슬라이더 등을 바탕으로 타자들을 곧잘 요리했다.
 
1993년 KBO 데뷔 첫 해부터 2.54의 평균자책점과 함께 14승을 거둬 다승 3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 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15이닝 2실점이라는 인생 최고의 투구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 다음 시즌에는 평균자책점 2위에 오르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었다.
 
이후 방위병 복무로 홈경기만 등판하면서도 2년간 준수한 성적을 거뒀고, 군복무를 마친 후에도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며 활약을 이어갔다. 그러나 커리어 초반의 혹사로 인한 부상으로 1999년부터 2시즌 가량을 날리게 된다.
 
이후 삼성의 안일한 판단으로 인해 부상 중이던 박충식은 이강철의 보상선수로 타이거즈로 향하게 됐고, 그 당시 타이거즈의 열악한 환경에 제대로 된 재활을 하지 못해 결국 만 32세의 젊은 나이에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주요 시즌: 1994년(KBO) 32경기 203.1이닝 14승 3세이브 ERA 2.35 130탈삼진
 

35위 이상훈

 
생년월일: 1971년 3월 11일
투타: 좌투좌타
주요 소속팀: LG 트윈스

 
장발을 휘날리며 빠른 공을 던지던 선수로 ‘야생마’라는 별명과 함께 짧고 강렬한 커리어를 보냈다. KBO와 NPB, MLB 무대를 모두 경험한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며, 선발과 마무리에서 모두 좋은 활약을 펼쳤다.
 
1993년 LG 트윈스 소속으로 KBO 무대에 데뷔했으며, 이듬해 다승 1위, 탈삼진 2위, ERA 5위 등에 오르며 팀의 에이스로 도약했다. 1995년에는 2년 연속 다승왕에 더해 투수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며 커리어하이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1995년의 혹사와 부상으로 인해 이후 마무리로 전향했으며, 1997년 구원왕에 올랐다. 1998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하며 NPB 진출을 시도했고, 첫 해에는 다소 부진했으나 1999년에는 100이닝 가까이 투구하며 2점대 ERA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 이상훈은 한 단계 더 나아가 MLB 진출을 시도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하며 2000년 MLB 무대를 밟는 것에 성공했고, 이후에는 오클랜드를 거치며 마이너에서 뛰다가 2002년 시즌 초반 LG 트윈스로의 복귀를 선택했다.
 
2002년 늦은 시즌 시작에도 마무리로 80이닝을 넘기며 1점대 ERA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고, 다음 시즌에는 세이브 1위에 올랐다. 그러나 구단과의 불화로 2004년 SK로 트레이드 됐고, 결국 시즌 중반 ‘LG를 상대로 공을 던질 수 없다’는 낭만적인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
 
주요 시즌: 1995년(KBO) 30경기 228.1이닝 20승 ERA 2.01 142탈삼진
 

34위 봉중근


생년월일: 1980년 7월 15일
투타: 좌투좌타
주요 소속팀: LG 트윈스
 

마이너리그 시절 타자에서 투수로 전향해 성공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이다. 독특한 투구폼으로 타자들을 잘 현혹시켰으며, 야구 역사상 최고의 주자 중 하나인 이치로조차도 땅을 기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견제 능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신일고 재학 도중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제안을 받아 어린 나이에 미국 무대를 밟았다. 여담이지만 이 당시 봉중근을 영입한 스카우터는 그의 재능을 무려 스탠 뮤지얼(MLB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타자)정도로 평가했으나 구단은 봉중근을 투수로 육성했다.
 
2002년부터 3년 간 MLB에서 활약한 봉중근은 이후 부상으로 경쟁력을 잃었고, 2007년 LG 트윈스에서 KBO 리그에 데뷔했다. 첫 시즌은 다소 아쉬웠으나, 이듬해 이닝 1위, ERA 3위 등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등극했고 2010년까지 팀의 1선발로 활약했다.
 
2012년부터는 마무리 투수로 전향했고, 마무리로도 3년 동안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선보였다. 그러나 2017년 부상 이후 투구폼 변경 및 타자 재전향 등 여러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2018년 은퇴를 선언했다.
 
봉중근은 대표팀에서 2번의 WBC와 아시안게임,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선발된 바 있다. 특히 2009년 WBC에서는 일본을 상대로만 3경기에 선발 등판해 좋은 모습을 보이며 ‘봉중근 의사’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었고, 대회 올스타로도 선정됐다.
 
주요 시즌: 2008년(KBO) 28경기 186.1이닝 11승 ERA 2.66 140탈삼진
 

33위 김기태

 
생년월일: 1952년 10월 16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히로시마 도요카프

 
재일교포 출신의 잠수함 투수로 NPB에서 굵직한 커리어를 남겼다. 현재는 일본으로 귀화한 상태지만 커리어 말년에 KBO 리그에 뛰면서 한국 야구 발전에 간접적으로 기여한 점을 감안해 이번 순위에 포함했다. 언더핸드임에도 구속이 매우 빨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2년 히로시마 소속으로 NPB 1군 무대에 데뷔했고, 1973년 2.54의 ERA와 10승을 기록하며 팀의 주축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1974년에는 다승왕과 탈삼진왕을 차지하고 올스타로도 선정되며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 해 연말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실명 위기를 넘긴 김기태는 1977년 난카이 호크스(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해 2.51의 ERA, 10승으로 통산 2번째 올스타로 선정됐고, 1979년과 1980년, 각각 16세이브와 13세이브로 2년 연속 세이브왕에 올랐다.
 
1982년에는 2.64의 ERA와 21세이브로 3번째 올스타로 선정되며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기태는 1985년 요미우리에서의 1년을 끝으로 NPB 생활을 마무리했다. 김기태는 NPB 통산 461경기 1162이닝 68승 92세이브 ERA 3.33을 기록했다.
 
이후 김기태가 선택한 것은 한국행이었고, 청보와 삼성에서 각각 1년을 보낸 뒤 커리어를 끝냈다. 30대 중반의 노장이었기 때문에 기대했던 성적을 올리진 못했지만, 모국에서 보낸 2년이 마냥 의미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요 시즌: 1974년(NPB) 44경기 252이닝 20승 ERA 3.64 207탈삼진
 

32위 장원준

 
생년월일: 1985년 7월 31일
투타: 좌투좌타
주요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안정적인 투구폼을 바탕으로 위력적인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구사했던 좌완투수이다. 경기별로는 다소 기복이 있었으나, 시즌이 끝나고 보면 항상 꾸준하게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는 특이한 선수였다. 정확히 KBO 통산 2000이닝을 기록해 이 부문 10위에 올라있다.
 
2004년 롯데 자이언츠의 1차 지명을 받아 KBO에 데뷔했고, 그 시즌부터 많은 기회를 받았다. 2006년 규정이닝을 채우며 3점대 ERA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고, 2008년 커리어 첫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2011년 군입대전까지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14년에도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고, 2015년부터는 두산으로 이적해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 ERA 2위에 오르는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후 급격히 기량이 하락했고, 2023년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주요 시즌: 2017년(KBO) 29경기 180.1이닝 14승 ERA 3.14 125탈삼진
 

31위 정대현


생년월일: 1978년 11월 10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SK 와이번스

 
국내 최고의 싱커를 구사하던 언더핸드 투수로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인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9회말의 주인공이다. ‘벌떼’소리를 듣던 SK 왕조의 불펜진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기량을 가져 ‘여왕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마무리로 활약했다.
 
경희대 재학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정대현은 2001년 SK에서 KBO 무대에 데뷔했다. 매년 낮은 ERA와 많은 세이브 및 홀드를 기록하며 SK의 뒷문을 든든히 지켰고, 특히 2007년에는 0점대 ERA로 난공불락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대현 2012년 FA로 롯데로 이적했으나,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제 기량을 다 보이지 못하고 2016년 은퇴를 선언했다. KBO 통산 106세이브-121홀드로 100세이브-100홀드를 모두 달성한 2명 중 1명이며, 홀드 역대 6위에 올라있다.
 
대표팀에서 정대현은 가장 믿음직한 투수였으며, ‘미국 킬러’의 호칭을 얻은 시드니 올림픽부터 약 15년 간 단골로 차출됐다.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9회말 1사 만루 위기를 병살로 막던 장면은 모든 한국 야구팬들의 머릿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 확신한다.
 
주요 시즌: 2007년(KBO) 60경기 78.1이닝 3승 3홀드 27세이브 ERA 0.92 65탈삼진
 
 

Honorable Mention

 

정삼흠


생년월일: 1961년 11월 5일
투타: 우투좌타
주요 소속팀: LG 트윈스

 
구속은 다소 느렸지만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한 타자와의 수 싸움이 매우 뛰어나 ‘아이큐 피쳐’라고 불렸다. 커리어 내내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KBO 통산 106승 47세이브를 남겼고, 1990년에는 세이브 2위, 1993년에는 다승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주요 시즌: 1990년(KBO) 55경기 168.1이닝 8승 23세이브 ERA 2.78 86탈삼진
 

이대진

 
생년월일: 1974년 6월 9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강속구와 커브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구를 하는 파워피쳐였으며, 탈삼진왕을 두 차례나 차지하고 10타자 연속 삼진 기록을 세울 정도로 구위가 뛰어났다. KBO 통산 100승과 22세이브를 남겼으며, 1997년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바 있다.
 
주요 시즌: 1996년(KBO) 31경기 159.2이닝 16승 3세이브 ERA 2.37 146탈삼진
 

김정수


생년월일: 1962년 7월 24일
투타: 좌투우타
주요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선발과 계투, 마무리 등 여러 보직을 모두 오가던 스윙맨으로 KBO 통산 92승 34세이브 33홀드를 남겼다. KBO가 2000년 이전부터 홀드 집계를 했다면 더 높게 평가 받았을 것이다. 한국시리즈에서도 극강의 모습을 보여 ‘가을 까치’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주요 시즌: 1992년(KBO) 33경기 165.1이닝 14승 1세이브 ERA 3.16 126탈삼진
 

위재영


생년월일: 1972년 5월 21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면서 현대 유니콘스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선수이다. 선발로는 10승 이상을 3차례 기록했고, 마무리로는 2000년과 2001년 2년 연속으로 세이브 2위에 올랐다. 허리 부상으로 인해 다소 커리어를 일찍 마무리한 감이 있다.
 
주요 시즌: 1996년(KBO) 30경기 181.2이닝 12승 ERA 2.72 138탈삼진
 

김태원


생년월일: 1964년 1월 28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LG 트윈스

 
199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았던 장신 투수로, 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파이어볼러였다. KBO 리그에서 12시즌을 보내면서 두 자릿수 승리와 2점대 ERA를 각 3번씩 기록한 바 있다.
 
주요 시즌: 1990년(KBO) 33경기 193.1이닝 18승 1세이브 ERA 2.51 127탈삼진
 

정우람


생년월일: 1985년 6월 1일
투타: 좌투좌타
주요 소속팀: SK 와이번스

 
KBO 통산 출장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로 매년 많은 이닝을 던지며 혹사를 당했지만 특유의 내구성으로 기량을 유지하며 롱런에 성공했다. KBO 역대 2명에 불과한 통산 100홀드-100세이브 동시 달성자이며 통산 홀드 4위, 세이브 6위에 올라있다.
 
주요 시즌: 2011년(KBO) 68경기 94.1이닝 4승 7세이브 25홀드 ERA 1.81 68탈삼진
 

임신근


생년월일: 1949년 11월 28일
투타: 좌투좌타
주요 소속팀: 한일은행 야구단

 
1970년대 초반 대한민국 최고의 좌완투수 중 하나로 고교야구와 실업야구 무대를 지배한 에이스였다. 해병대 복무 시절 혹사로 인해 구위가 떨어지자 제대 이후에는 타자로 전향해 타격왕을 차지할 정도로 다재다능함과 천재성을 보유한 선수이기도 했다.
 
주요 시즌: 미상
 

임호균


생년월일: 1956년 3월 26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당대 최고의 제구력을 가졌던 선수로 홈플레이트 위에 담배를 세워두고 공을 던져 담뱃불만 껐다는 전설적인 얘기가 전해진다. 1982년 세계선수권에서 대회 내내 1실점도 하지 않아 최우수 투수상을 수상했으며, KBO에서는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한 바 있다.
 
주요 시즌: 1983년(KBO) 35경기 234.2이닝 12승 2세이브 ERA 3.03 86탈삼진
 

장호연


생년월일: 1960년 5월 5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OB 베어스
 

구속은 빠르지 않았지만, 다양한 구질을 활용하여 상대 타자들을 요리했던 선수이다. 1984년 KBO 평균자책점 1위 타이틀을 따낸 바 있으며, 1988년 개막전에는 탈삼진 없이 99구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KBO 통산 109승을 남겼다.
 
주요 시즌: 1986년(KBO) 31경기 165.2이닝 13승 3세이브 ERA 1.90 44탈삼진
 

서동준


생년월일: 1935년 9월 1일
투타: 미상
주요 소속팀: 조선운송야구단
 

고교 시절부터 전국구로 이름을 날린 1950년대 최고의 우완 투수 중 하나이다. 1954년에는 내한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하는 경기에도 선발됐고, 1955년 2회 아시아선수권 일본전에서는 역투를 선보였으며, 그 해 대한체육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요 시즌: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