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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한국 야구의 영웅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TOP 10

by 마드리드의 거인 2024. 3. 25.

*2023년까지의 기록만 반영했습니다.
*재일교포의 경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밝힌 인물을 포함했습니다.
*자료의 부족으로 누락된 인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의 주관을 많이 반영했습니다.
 

10위 김경문

생년월일: 1958년 12월 11일
주요 소속팀: 두산 베어스

 
탄탄한 수비와 우수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지속 가능한 강팀을 만드는데 뛰어난 감독이었다. KBO 통산 0.537의 높은 승률을 자랑하며, 두산을 3차례, NC를 1차례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킨 경험이 있다.
 
다만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 자체가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며, 다른 명장들처럼 투수를 심하게 혹사시키는 경향이 있다. 두산을 떠나 NC로 이적할 때의 행보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선수단 관리에도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는 한국 야구사 최고의 쾌거 중 하나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승 우승을 달성한 바 있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하고 말았다.
 

9위 김재박

생년월일: 1954년 6월 23일
주요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선수 시절 역대 최고의 유격수로 이름을 날리며 실업야구 무대를 지배했던 인물로 1996년 현대 유니콘스에 부임하며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감독 데뷔 첫 시즌부터 팀을 한국시리즈에 올렸고, 1998년 첫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2000년에는 KBO 역대 최강의 포스로 정규시즌 90승을 기록하고 통합 우승을 차지했으며, 구단의 재정이 약해진 2003년과 2004년에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많은 야구팬들이 이 시기의 현대를 왕조라고 부른다.
 
다만 강한 타선을 두고도 번트를 자주 시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는 삿포로 참사와 도하 참사를 경험하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8위 이광환

생년월일: 1948년 3월 8일
주요 소속팀: LG 트윈스
 

지옥 훈련과 투수 혹사가 만연하던 90년대에 자율야구와 투수 분업화를 주장한 선구자이다. 또한 2020년대의 KBO 지도자들은 아직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강한 2번 타자론’은 거의 30년을 앞서나간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1994년의 LG 트윈스는 이광환의 이론이 가장 잘 실현됐던 팀이다. 타선에서는 신인 삼총사, 특히 그중에서도 유지현-김재현의 ‘강한 테이블 세터’가 빛을 발했으며, 마운드에서는 이상훈-김태원의 원투펀치와 ‘전문 마무리’ 김용수가 조화를 잘 이뤄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1995년 OB에게 역전 우승을 헌납한 뒤 하락세를 겪었고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전성기가 짧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시대를 앞서나간 야구 이론만큼은 한국야구사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고,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7위 김영덕

생년월일: 1936년 1월 27일
주요 소속팀: 빙그레 이글스
 

한국 야구 역사에 영원히 남을 KBO 리그 초대 우승 감독이며, 144경기 이상 출장한 감독 중 가장 높은 통산 승률을 갖고 있다. 한국시리즈 준우승 6회나 과도한 투수 혹사 및 기록 밀어주기라는 어두운 면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KBO 원년, OB베어스를 맡아 에이스 박철순의 활약에 힘입어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1984년부터 삼성 감독으로 옮겨 3년 동안 우승 1회와 준우승 2회를 달성했지만, 최동원 1명에 밀려 롯데에게 한국시리즈를 내주기도 하는 등 전력에 비해 아쉬운 결과라는 평이 많았다.
 
1988년에는 하위권에 머물던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6년 동안 무려 4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 4번의 한국시리즈에서 2번의 업셋을 당하며 단 1번의 우승도 거두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6위 어우홍

생년월일: 1931년 5월 19일
주요 소속팀: 한국전력 야구단
 

1960년대와 70년대, 부산상고와 경남고, 한국전력 및 동아대 등을 맡으며 이름을 날린 감독이다. 이 기간의 명성을 바탕으로 1981년 대륙간컵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고, 이 대회에서 최동원의 활약에 힘입어 4위를 차지했다.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그 유명한 '김재박의 개구리번트‘를 앞세워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을 바탕으로 세계야구연맹으로부터 올해의 감독상까지 받게 된다. 이후 MBC 청룡과 롯데를 맡았으나 그다지 잘 풀리지는 않았다.
 

5위 류중일

생년월일: 1963년 5월 21일
주요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선수 시절에도 삼성에서 이름을 날렸던 유격수로, 2011년 삼성 감독을 맡아 KBO 역사상 전무후무한 정규시즌 5연패와 통합 4연패를 달성했다. 2011년과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2년 연속으로 SK를 제압하며 SK왕조의 종료 및 삼성왕조의 시작을 알렸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에게 1승 3패로 몰려 고비를 맞기도 했으나, 필사적인 총력전으로 대역전 우승을 차지했고, 2014년에는 넥센을 제압하며 통합 4연패를 완성했다. 2015년 선수단의 도박 스캔들로 아쉽게 통합 5연패를 놓쳤으며, 이후 LG 감독을 맡기도 했다.
 
2013년 WBC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처음으로 맡아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했지만 2승 1패를 거두고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2차례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하며 준수하게 국가대표팀 감독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4위 김태형

생년월일: 1967년 9월 12일
주요 소속팀: 두산 베어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선수단을 휘어잡는 감독으로, 강공을 좋아하는 경기 운영 방식에서도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2015년부터 두산 베어스 감독을 맡아 KBO역사상 유일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두산 감독을 맡은 첫 해 포스트시즌을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했으나, 연이은 업셋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16년에는 압도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KBO 역대 단일 시즌 최다승인 93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2연패 및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하락세를 겪었으나, 2019년 SK를 상대로 9경기 차를 뒤집고 극적인 정규시즌 우승과 통합 우승을 기록했다. 그 뒤로도 구단의 약해진 재정과 전력을 포스트시즌 업셋으로 극복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2021년까지 이어간 바 있다.
 

3위 김성근

생년월일: 1941년 10월 30일
주요 소속팀: SK 와이번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팬과 안티를 보유한 감독이며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많은 업적을 남긴 것 역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60년대 말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KBO리그에서는 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등에서 족적을 남겼다. 만년 하위권이던 태평양과 쌍방울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고, LG 트윈스에서도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김성근이 가장 빛났던 시기는 역시 SK 와이번스 시절로, 이 시기 김성근은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및 3차례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당시의 SK는 리그 공공의 적이면서도 리그의 트렌드를 주도했으며, 야구팬들에게 왕조라는 칭호를 얻었다.
 
적극적인 전력 분석과 시프트 활용 같은 면에서는 시대를 앞서나간 것으로도 평가할 수 있겠으나, 너무나도 많은 투수를 혹사시킨 점은 분명하고도 치명적인 과오였다. 특유의 이중적인 언행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유능한 인물이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2위 김인식

생년월일: 1947년 5월 6일
주요 소속팀: 두산 베어스
 

KBO 통산 최다승 3위에 올라있는 감독으로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를 맡으면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쌍방울에서 2년을 보낸 뒤 1995년 OB베어스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첫 해부터 극적인 대역전극을 선보이며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2001년에는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한 뒤 포스트시즌에서 연이은 업셋으로 베어스에게 또 다시 우승을 안겼다. 이후 한화 이글스를 맡아 3년 연속 가을야구 및 한국시리즈 1회 진출 등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남기기도 했다.
 
KBO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보낸 김인식이지만, 그가 가장 빛난 곳은 역시 국가대표팀이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전승 우승을 달성했고, 2006년 초대 WBC에서는 MLB 톱스타들을 총출동시킨 미국을 잡아내며 4강에 진출했다.
 
2009년 2회 WBC에서는 준우승을 거뒀고, 2015년 초대 프리미어12에서는 신들린 대타 작전으로 도쿄돔의 기적을 연출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김인식은 아마도 야구로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기쁨을 안긴 감독일 것이다.
 

1위 김응용

생년월일: 1941년 9월 15일
주요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현역시절 국가대표 4번 타자로 이름을 날린 김응용은 1973년 만 31세의 젊은 나이로 실업야구팀 한일은행에서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1983년 KBO구단 해태 타이거즈의 감독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김응용의 전설이 시작됐다.
 
KBO에서의 김응용은 통산 최다 경기, 최다승, 최다 우승 감독이라는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한다. 특히 해태를 맡은 18년 동안 한국시리즈 4연패를 포함해 9회 진출 및 9전 전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삼성 감독으로 10회 우승을 완성했다.
 
김응용은 국가대표팀을 맡아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1977년 대륙간컵에서 한국 야구 사상 최초의 세계 대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아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소속팀에서 압도적인 업적을 남겼고, 대표팀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쌓았기에 김응용을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선정했다.
 

 
Honourable Mention

 

강병철

생년월일: 1946년 8월 21일
주요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타자를 보는 눈이 뛰어나 커리어 동안 많은 타자들을 육성했던 인물이다. 롯데와 한화, SK에서 감독 생활을 했으며, 특히 롯데는 무려 3번을 맡아 그들의 유이한 우승을 모두 책임졌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을 5번 등판시켜 4승을 거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서영무

생년월일: 1934년 5월 18일
주요 소속팀: 경북 고등학교
 

‘대구야구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로 훌륭한 인품을 가져 제자들의 인성 교육에까지 힘썼다. 고교야구가 인기를 끌던 1971년에는 경북고를 이끌고 무려 5개 대회 우승과 감독상 6개를 따냈으며, 이후 삼성의 초대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김계현

생년월일: 미상

주요 소속팀: 한국전력 야구단

 

선수 시절 국가대표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고 은퇴 후 한국전력의 창단 감독을 맡아 20여 년 동안 수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대표팀 감독으로는 아시아 선수권 우승을 경험한 바 있다. 야구 용어집 발간과 프로야구 설립 등을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