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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한국 야구의 영웅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수 TOP 10

by 마드리드의 거인 2024. 4. 1.

 
*2023년까지의 기록만 반영했습니다.
*PED 사용이 적발된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다른 포지션에서 쌓은 커리어 역시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습니다.
*재일교포의 경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밝힌 인물을 포함했습니다.
*자료의 부족으로 누락된 인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의 주관을 많이 반영했습니다.
 

10위 유승안

생년월일: 1956년 6월 1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빙그레 이글스

 
실업야구 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강타자로 당시로는 드문 홈런왕 포수였다고 전해진다. 만 25세에 KBO가 출범하여 MBC 청룡에 입단했으나 좋은 타격 실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회를 받지는 못했다.
 
이후 해태를 거쳐 만 29세에 입단한 빙그레에서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게 됐다. 1987년에는 0.308의 타율과 12홈런을 기록하며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1989년에는 21홈런을 기록하며 포수 골든글러브를 받은 바 있다.
 
주요 시즌: 1989년(KBO) 115경기 타율 0.281 104안타 21홈런 OPS 0.855
 

9위 김동기

생년월일: 1964년 3월 5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
 

80년대 말~90년대 초에 활약했던 공격형 포수로 통산 0.795의 높은 OPS를 기록했다. 전성기를 보낼 당시의 태평양은 타격이 좋지 못한 팀이었기에, 김동기는 포수로서의 수비부담과 중심타자로서의 부담감을 이중으로 느껴야 했다.
 
두 자릿수 홈런을 무려 6번이나 기록했지만, 팀도 비인기팀이었고 유독 상복이 없어 시상식 때마다 아쉬움을 삼키곤 했다. 당대 KBO의 지배자였던 선동렬에게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 그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2번이나 기록한 바 있다.
 
주요 시즌: 1992년(KBO) 107경기 타율 0.294 98안타 15홈런 OPS 0.877
 

8위 홍성흔

생년월일: 1976년 12월 12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두산 베어스
 

통산 타율 3할이 넘을 정도의 정교한 타격을 선보였던 선수로, 특유의 쇼맨십과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커리어 중반 이후로는 지명타자로 전향했지만, 포수로도 많은 경기에 나섰고 종합적인 커리어가 훌륭하여 포수 부문 순위에 포함했다.
 
1999년 데뷔 첫 해에 16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고, 2008년 지명타자로 전향하기 전까지 2차례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특히 2004년에는 165안타로 최다안타 1위에 올라 포수로서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후 부상으로 수비에 문제가 생겨 지명타자로 전환한 선택이 대성공을 거두며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4연패 및 3년 연속 타격 2위 등, 본인의 타격 실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특히 2010년에는 팀 동료 ‘7관왕’ 이대호와 각종 타이틀을 두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대표팀에는 경희대 4학년이던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부터 선발됐으며, 2006년 WBC까지 굵직한 대회에는 대부분 참가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2회 및 올림픽과 WBC 3위를 기록한 바 있다.
 
주요 시즌: 2010년(KBO) 111경기 타율 0.350 151안타 26홈런 OPS 1.028
 

7위 김영조

생년월일: 1923년 3월 15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금융조합연합회
 

일제 강점기 시절 차별을 이겨내고 야구 명문이던 와세다 대학교에서 주장을 맡았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올드 팬들은 김영조를 두고 ‘수비는 이만수보다 잘했고, 타격은 박경완보다 잘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사히 군(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 입단해 NPB 데뷔 첫 타석부터 홈런을 기록했다. 포수와 1,2,3루를 모두 오가는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했고, 팀 내 홈런 1위, OPS 3위 등 맹타를 휘둘렀으나 전쟁으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내에서는 금융조합연합회 소속으로 활약하며 50년대 후반까지 일류 선수 자리를 유지했다. 사고로 오른손 엄지손가락 절반을 잃었음에도 장타력은 여전해 각종 대회마다 홈런상을 휩쓸었다고 전해진다.
 
주요 시즌: 미상
 

6위 유완식

생년월일: 1919년 5월 23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전인천군
 

일제 강점기부터 6.25 전쟁 이후까지 활약했던 선수로 포수로서의 기량이 훌륭했음은 물론이고, 투수로도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할 정도로 빼어난 실력을 보유한 선수였다. 다만 NPB에서는 포수로 활약한 것을 감안해 이번 글에서는 포수로 분류했다.
 
일본 유학 시절 한큐 브레이브스(현 오릭스 버팔로스)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입단 테스트를 요청했고 이를 당당하게 통과했다. 이후 7년 동안 한큐에서 백업 포수로 활약하며 통산 11안타와 1홈런을 남겼다.
 
해방 이후 인천에 장착한 유완식은 전인천군을 결성했고, 1947년 1년 동안만 무려 4개의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1954년에는 늦은 나이에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해 대표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은퇴 후 유완식은 지도자로 많은 인천 출신 명선수들을 길러냈으며, 대한야구협회 이사와 한국야구위원회 규칙위원 등을 지내기도 했다. SK 와이번스에서는 이러한 유완식의 업적을 기념하며 ‘유완식 투수상’을 제정한 바 있다.
 
주요 시즌: 미상
 

5위 김동수

생년월일: 1967년 10월 27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LG 트윈스
 

90년대 최고의 포수로 공수에서 모두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을 보였다. 1990년 데뷔 첫 해 신인왕에 올랐으며, 신인 포수 최초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장타력이 뛰어나 드넓은 잠실을 홈으로 쓰면서도 거의 매년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고, 20홈런도 두 차례 기록했다.
 
LG에서 10년간 무려 6회의 골든글러브를 받고 FA로 삼성으로 이적했으나, 이후 삼성과 SK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SK에서 방출된 뒤 늦은 나이에 현대에서 부활에 성공해 커리어 첫 3할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요 시즌: 1998년(KBO) 118경기 타율 0.284 116안타 20홈런 OPS 0.872
 

4위 강민호

생년월일: 1985년 8월 18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뛰어난 장타력과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공수에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포수이며, 압도적인 내구성을 가져 매 시즌 아주 많은 경기에 나선다. 100경기 이상 나선 시즌이 무려 17시즌이며, 만 38세 시즌인 2024년에도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8년 19홈런을 때려내며 처음으로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2011년 이후로 양의지와 골든글러브를 양분하며 총 6번의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15년에는 포수 최초로 단일 시즌 3할-30홈런을 동시에 기록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드러낸 선수답게 대표팀에서는 단골로 활약했으며,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부터 2020 도쿄올림픽 사이의 거의 모든 대회에 선발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퇴장을 당한 장면은 많은 야구팬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주요 시즌: 2015년(KBO) 123경기 타율 0.311 118안타 35홈런 OPS 1.060
 

3위 양의지

생년월일: 1987년 6월 5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두산 베어스
 

무심해 보이는 타격자세로 맹타를 휘두르는 선수로, 수비 부담이 큰 포수임에도 불구하고 통산 3할의 타율과 5할의 장타율을 기록 중이다. 수비력 역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9개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바 있다.
 
2010년 20홈런을 기록하고 신인왕에 올랐고, 2014년 커리어 최초로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그 후로 계속 강민호와 포수 골든글러브를 양분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3년 연속 OPS 1 이상을 기록했고, 2019년에는 타율-출루율-장타율 타이틀을 모두 석권했다.
 
한국시리즈 MVP를 2번이나 차지할 정도로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였으나, 국가대표팀에서는 다소 부진한 타격을 보였다. 그러나 2023년 WBC에서는 다르빗슈 유에게 홈런을 친 것을 포함해 맹타를 휘두르고 대표팀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주요 시즌: 2020년(KBO) 130경기 타율 0.328 151안타 33홈런 OPS 1.003
 

2위 박경완

생년월일: 1972년 7월 11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SK 와이번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포수 중 하나로 꼽히며, 타석에서는 뛰어난 선구안과 장타력을 선보인 선수이다. 골든글러브 4회, 홈런왕 2회, MVP 1회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데뷔팀인 쌍방울에서는 4년 차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현대에서는 홈런왕, MVP, 포수 역대 유일 40홈런 및 20-20클럽 가입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SK에서도 홈런왕에 올랐고 영구결번으로까지 지정됐다.
 
국가대표팀에서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나 2009년 WBC 같은 굵직한 대회에 선발되기도 했으며, 투수들과의 안정적인 배터리 호흡으로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데 공헌한 바 있다.
 
주요 시즌: 2000년(KBO) 130경기 타율 0.282 115안타 40홈런 OPS 1.034
 

1위 이만수

생년월일: 1958년 9월 19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일반적인 포수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압도적인 타격을 선보이며 리그를 지배한 당대 최고의 타자이다. 다운스윙이 당연하던 초창기 KBO에서 오늘날의 메이저리거들과 같은 어퍼스윙을 고집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이만수는 타격왕 1회, 홈런왕 3회, 골든글러브 5연패에 더해 1983년에는 KBO 정규시즌 MVP에 올랐고, 1984년에는 역대 2명에 불과한 타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대호에 버금가는 공격력을 가진 선수가 포수를 소화하고 있던 것이다.
 
간혹 그의 수비 능력을 폄하하는 주장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여러 지표를 고려했을 때 이만수의 수비가 평균 이하였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며, 설사 그랬다고 가정하더라도 여전히 타격에서의 기여도로 이를 만회하여 다른 경쟁자를 다 제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수비 부담이 가장 큰 포지션에서 당대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했던 이만수는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수임이 분명하고, 나아가 한국 야구 역대 최고의 우타자 중 하나로 꼽혀도 손색이 없다.
 
주요 시즌: 1984년(KBO) 89경기 타율 0.340 102안타 23홈런 OPS 1.047
 

 

Honourable Mention

 

 

김진우

생년월일: 1958년 9월 24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삼미 슈퍼스타즈
 

아마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명포수로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에도 공헌한 바 있다. 만 24세에 입단한 삼미에서는 몇 없는 강타자로 활약했으나, 통계에 무지한 당시의 야구계 분위기에 저평가를 받은 경향이 있다. 최근에 활약했으면 평가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주요 시즌: 1986년(KBO) 91경기 타율 0.286 86안타 OPS 0.829
 

정동진

생년월일: 1946년 4월 23일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제일은행 야구단
 

1960~70년대 대표팀 안방을 주로 지킨 선수로 수비력이 매우 우수해 김영조 이후로 가장 뛰어난 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스텝으로도 2루 송구가 가능할 정도로 어깨가 좋았으며, 명석한 두뇌로 상대 타자들의 장단점을 모두 숙지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주요 시즌: 미상

 

조인성

생년월일: 1975년

투타: 우투우타

주요 소속팀: LG 트윈스

 

강력한 어깨와 일발 장타를 가졌던 선수로 앉아서 2루에 송구하는 ‘앉아쏴’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2006년 WBC에 출전해 대표팀의 4강 진출에 공헌했고, 2010년에는 잠실을 홈으로 쓰면서도 KBO 포수 최초로 100타점을 기록하고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바 있다.

 

주요 시즌: 2010년(KBO) 133경기 타율 0.317 145안타 28홈런 OPS 0.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