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한국시간 6월 4일, 레알 마드리드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카림 벤제마가 구단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구단 역사상 가장 많은 어시스트와 두 번째로 많은 골을 기록한 레전드가 떠나게 된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는 동안은 호날두의 보조자 격으로 인식됐던 벤제마였지만, 그래도 레알에서의 마지막 2시즌 간은 축구계의 충분한 인정을 받았다. 특히 2021/22시즌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세계 최고의 활약을 하며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호날두가 떠난 직후, 그리고 발롱도르를 받기 전인 18/19시즌부터 20/21시즌의 3시즌 간의 활약상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기회에 이를 언급하고자 한다.
#2018/19시즌
18/19시즌은 레알 선수단 전체가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였던 시즌이다. 각자 일부 띄엄띄엄 좋은 활약을 했던 기간들은 있었지만 냉정하게 시즌 전체의 활약이 좋았다고 할 선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팀 성적도 리그 3위 및 챔스 16강 탈락으로 좋지 못했다.
그러나 벤제마만큼은 달랐다. 이 시즌 벤제마는 라리가 36경기 21골 6도움, 챔피언스리그 8경기 4골 2도움, 시즌 총 53경기 30골 10도움을 기록했다. 해당 시즌 라리가에서 벤제마보다 많은 골과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선수는 리오넬 메시 1명이었다.
물론 메시와 호날두의 시대를 목격한 우리에게 저 숫자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시즌 벤제마에게는 이렇다 할 공격파트너가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시즌 마르코 아센시오는 리그 30경기 1골에 그쳤고, 가레스 베일은 태업 및 부상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부진하기 시작했다.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는 포텐이 터지기 전으로 공격 작업을 마무리하는 킥이 좋지 못했고, 루카스 바스케스는 파괴력이 떨어졌다.
리그 기준 10골, 혹은 10도움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단 1명도 없었고, 벤제마는 레알의 유일한 공격 루트로 혼자서 박스 안팎을 오가며 공격 작업을 진두지휘해야 했다. 벤제마의 활약이 없었다면, 레알은 리그 4위 안에 들어 챔스 티켓을 따내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2019/20시즌
2019/20시즌은 지네딘 지단 감독 2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즌이다. 지단 감독은 빠르게 팀을 재정비하는 것에 성공했으며, 선수 개개인의 폼 역시도 18/19시즌에 비해 훨씬 좋았다.
그러나 해당 시즌 역시도 벤제마를 제외한 나머지 레알 공격수들의 폼은 좋지 못했다. 비니시우스는 지난 시즌보다 더 다운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였고, 베일 역시도 시즌 초반 이후로는 거의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아자르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해당 시즌 벤제마를 제외하고 리그 10골 혹은 10어시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센터백 세르히오 라모스(11골) 1명이며, 그 라모스마저도 6골은 페널티킥이었다. 여전히 벤제마를 도울 공격 파트너는 없었던 것이다. 또한 해당 시즌 라리가는 수비적인 기조가 특히 심해져 유럽에서 가장 골이 안 터지는 리그 중 하나가 됐다.
이런 와중에도 벤제마는 리그 21골 8도움, 챔피언스리그 8경기 5골 2도움을 기록했고 시즌 총 48경기 27골 11도움을 기록했다. 또한 이번 시즌 역시 메시에 이어 득점과 공격 포인트에서 리그 2위에 올랐고, 이번에는 메시를 제치고 라리가 MVP까지 수상했다.
벤제마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레알은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또 해당 시즌 코로나로 인해 발롱도르 시상이 취소된 것 역시 벤제마에게는 아쉬운 일인데, 만약 발롱도르 투표가 진행됐더라면 벤제마는 한 자리 수의 높은 순위까지도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
#2020/21시즌
지난 시즌을 리그 우승으로 마무리했기에 레알에겐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레알은 매우 많은 부상자를 배출하며 어려운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이 시즌 레알을 지탱하던 선수는 이번에도 역시나 벤제마였다. 벤제마는 리그 34경기 23골 9도움, 챔스 10경기 6골에 시즌 총 46경기 30골 9도움을 기록했다. 역시나 또다시 벤제마는 메시에 이어 리그 득점 2위와 공격포인트 2위를 기록했다.
언제나처럼 레알의 다른 공격수들 역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 시즌 중반 벤제마가 비니시우스를 두고 ‘상대팀처럼 플레이한다’고 험담을 해 논란이 됐을 때도 레알팬들 사이에서는 이해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만큼 벤제마가 고독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즌 레알에서 리그 10골 혹은 10어시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3선 미드필더인 토니 크로스가 유일했다(10도움). 크로스는 경이적인 롱패스들을 아무렇지 않게 성공시키곤 했지만, 3선에서 플레이하고 있던 만큼 벤제마를 직접적으로 돕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레알은 벤제마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리그 2위 및 챔스 4강 탈락을 기록하며 무관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이후부터 벤제마의 활약상은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벤제마가 유로와 네이션스리그에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유로 2020에서 프랑스는 16강에서 탈락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벤제마의 활약만큼은 뛰어났다. 벤제마는 유로 4경기에서 4골을 기록했고, 특히 팀이 탈락한 16강 스위스전에서도 멀티골을 기록하며 경기를 승부차기까지는 이끌었다.
그 경기에서 벤제마가 킬리안 음바페의 패스를 뒷발로 컨트롤한 뒤 골로 연결하는 장면을 보고 많은 축구팬들이 감탄했지만, 솔직히 필자는 그다지 감탄하지는 않았다. 이미 레알에서는 몇 시즌 동안 그 이상의 명장면들을 여러 차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네이션스리그 파이널 라운드에서도 벤제마는 4강 벨기에전과 결승 스페인전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성과들을 인정받은 벤제마는 2021년 발롱도르에서 메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조르지뉴에 이은 4위에 올랐다.
사실 필자는 냉정하게 봤을 때 그 당시 조르지뉴의 발롱도르 순위가 지나치게 높았다고 생각한다. 투표인단이 ‘트로피’가 아닌 ‘축구’를 봤다면, 3위는 조르지뉴가 아닌 벤제마에게 주어졌을 것이다. 벤제마의 발롱도르 포디움 입성은 무지한 투표인단 때문에 1년 늦어졌다.
이후로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이다. 마침내 비니시우스의 포텐이 터지며 벤제마는 행복하게 축구를 할 수 있게 됐고, 힘을 얻은 벤제마는 유럽 최강팀들을 손수 제압하고 팀에게 빅이어를 안겼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의 영광, 발롱도르까지 수상하게 된다.
21/22시즌은 벤제마의 커리어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시즌이다. 하지만 21/22시즌만큼이나 그 앞의 3시즌 역시 벤제마가 매우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만약 앞의 3시즌 동안에도 벤제마에게 적절한 공격 파트너가 있었다면 21/22시즌과 같은 성과를 더 일찍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벤제마에 대해서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부디 이 3시즌 동안 벤제마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고군분투했는지 알아주기 바란다. 수비적인 성향의 라리가에서 변변한 공격파트너 하나 없이 이런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 축구 클럽과 우리의 주장 카림 벤제마는 우리 클럽에서의 그의 뛰어나고도 잊을 수 없는 선수로서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카림 벤제마와의 작별을 알리는 레알 마드리드 공식 홈페이지 성명문의 시작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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