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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개막전 무승부 토트넘, 맞지 않았던 ‘손흥민 활용법’

by 마드리드의 거인 2023. 8. 14.

8월 13일 열린 프리미어리그 1라운드에서 토트넘이 브렌트포드를 상대로 2-2 무승부를 거뒀다. 주장 완장을 차며 기대를 모았던 손흥민은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앤지 포스테글루 토트넘 감독은 좌측면 공격을 진행할 때 왼쪽 윙어 손흥민을 터치 라인 쪽에 붙여두고 왼쪽 풀백 우도지에게는 인버티드롤을 부여했다. 불협화음은 여기서 시작됐다.

 

공격은 넓게, 수비는 좁게 하라는 말이 있다. 수비는 좁은 간격으로 서서 위험한 공간을 지키고 공격은 넓게 벌려 서서 수비가 위험한 공간 밖으로 나오도록 유인해야 하는 것이다.

 

즉 지공 상황에서는 상대의 수비를 끌어내기 위해 측면에서 플레이하는 ‘미끼’가 필요하다. 미끼가 상대 수비를 끌어내면 그 공간으로 다른 동료가 침투하거나, 혹은 미끼가 끌려 나온 상대 수비를 직접 제치고 더 좋은 기회를 만드는 것이 지공에서의 공격 전개 방식이다.

이 날 토트넘의 미끼는 손흥민이었다. 그리고 경기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손흥민에게 미끼 역할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애초에 포스테글루 감독이 손흥민의 장단점을 잘 숙지하고 있었다면 미끼 역할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화려하고 파괴력 넘치던 지난 시즌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 작업을 생각해보자. 시티의 왼쪽 측면의 미끼는 잭 그릴리시였다. 그릴리시는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가졌고 측면에서 상대를 제쳐내는 능력이 우수하다.

시티는 그릴리시가 직접 상대의 우측 수비를 제치거나, 혹은 상대의 우측 수비를 끌어냈고, 그 과정에서 생긴 하프 스페이스 공간으로 득점력이 뛰어난 왼쪽 메짤라 귄도안이 침투하는 위력적인 공격 패턴을 자랑했다.

 

그렇다면 이 날 토트넘의 공격 패턴은 어땠을까? 왼쪽 미끼 역할을 맡은 손흥민은 드리블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토트넘은 손흥민이 직접 상대를 제치고 들어가는 공격 옵션이 제한됐고, 선수들의 동선이 정립되지 않아 하프 스페이스 공략도 이뤄지지 않았다.

 

선수의 단점을 가리고 장점을 살리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손흥민은 프로 데뷔 10년 차가 넘었고,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명성도 뛰어난 선수이다. 일반적인 축구팬들도 손흥민의 장단점을 숙지하고 있는데, 포스테글루 감독에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손흥민은 득점 능력이 뛰어난 선수이다. 하지만 골문에서 멀어질수록 선수의 득점 확률은 떨어진다. 포스테글루 감독은 손흥민을 미끼로 활용하면서 단점인 드리블 능력을 부각시켰고, 장점인 득점 능력은 오히려 가려버렸다.

지단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 1기 시절을 생각해보자. 지단은 드리블 능력이 전성기에 비해 감소했지만 득점 감각은 여전히 우수했던 호날두를 좌측 프리롤로 기용하고 득점에 집중시켰다. 왼쪽 측면의 미끼는 마르셀루가 맡았고, 이 패턴으로 레알은 챔스 3연패를 달성했다.

 

포스테글루 감독에게 이 패턴은 충분히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 이 패턴이 생각해내기 어려운 것도 아니기에 진작 1라운드부터 이런 패턴을 들고 나왔어야 한다.

 

물론 우도기가 마르셀루처럼 드리블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기에 측면을 직접 허무는 옵션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도기가 중앙에서 머물렀을 때 특출 난 장점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손흥민의 득점력을 희생시키며 우도기를 중앙에 둘 이유가 없다.

만약 손흥민을 희생시켜서 다른 선수들의 폼이 올라가고 팀의 성적이 더 좋아진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지난 시즌 토트넘은 손흥민을 희생시키는 것을 선택했다가 케인 혼자 고군분투하는 팀으로 변모했고, 리그 8위에 그쳤다. 그리고 이제는 그 케인조차 없다.

 

그렇다면 토트넘이 취해야 할 선택지는 명확하다. 손흥민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해서 손흥민과 팀이 모두 잘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손흥민은 맞지 않는 롤에서 부진했던 지난 시즌에도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괜찮은 폼에서 적당한 롤을 부여받으면 더 많은 숫자의 득점을 기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케인이 떠난 이 시점에선 손흥민의 득점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플랜 A가 어긋날 경우 빠르게 수정하는 융통성은 명장의 조건 중 하나이다. 손흥민을 미끼로 활용하는 포스테글루 감독의 플랜 A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포스테글루 감독은 이제 손흥민을 프리롤이자 주득점원으로 활용하는 플랜 B를 가져와야 한다.

토트넘의 이번 시즌 순위는 손흥민의 위치, 그리고 손흥민의 득점 숫자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