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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칼럼

AG 야구 대표팀의 ‘명분 없는 모래주머니’ 연령 제한

by 마드리드의 거인 2023. 9. 23.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우여곡절 끝에 대회 시작을 알렸다. 대회 개막식은 오늘 9월 23일에 예정됐으며, 이미 19일부터 축구와 비치발리볼 등의 종목은 사전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대회 4연패에 도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약간의 변화를 줬다. 이전까지 선수 선발에 별도의 연령 혹은 연차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이번 대회에는 만 25세 이하, 혹은 4년 차 이하의 선수만 선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출처:뉴시스

또한 최대 3명까지 와일드카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위의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롯데 박세웅과 KIA 최원준까지 총 24명의 최종 엔트리를 완성했다. 반면 기존에 선발됐던 구창모, 이의리, 이정후는 부상으로 인해 윤동희, 김영규, 김성윤으로 교체가 됐다.

 

결론만 놓고 말하자면, 대표팀이 스스로 도입한 연령 및 연차 제한이 한국야구계에 어떤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연령 제한이 이번 대표팀에게 자칫 ‘스스로 부착한 모래주머니’로 작용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우선 연령 제한으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대표팀 전력의 약화이다. 대표팀 은퇴나 부상, 혹은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된 선수를 제외한 국내 투수 WAR 상위 10명 중 실제로 차출된 선수는 5명뿐이다. 쓸 수 있는 선수 절반을 연령 제한을 만들어서 굳이 쓰지 않는 것이다.

 

타자 쪽에서 같은 기준으로 국내 타자 WAR 상위 13명을 추렸을 때 실제로 선발된 선수는 3명에 불과하다. 무려 4분의 3이상이 연령 제한으로 인해 탈락했다. 아무리 봐도 현재 대표팀은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전력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방콕 아시안게임과 2019년 프리미어12에서 대표팀은 최선의 전력으로 나선 대만에게 패한 적이 있다. 만약 이번 대회 중요한 고비에서 자칫 대만에게 패해 금메달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리고 와일드카드 시스템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KBO가 어떤 신념으로 연령 제한을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와일드카드로 스스로 예외를 둔 걸 보면 그다지 중요한 신념은 아닌 듯하다. 우리끼리 제한을 만들고, 우리끼리 그 제한을 완화하는 상황은 우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와일드카드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최선을 다해 활용하기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최대 3명까지 선발이 가능하도록 한 와일드카드 선수는 엔트리에 단 2명만 포함됐고, 냉정하게 말해 WAR 0.6, wRC+90의 최원준은 와일드카드까지 활용해서 뽑아야할 선수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번 대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들이 경험을 얻고 성장해 다른 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된다면 연령 제한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실질적으로 그런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우선 이번 대회에 뽑힌 선수들이 모두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한다는 보장이 없다. 2008 베이징 올림픽부터 지난 WBC까지 대표팀의 주축이었던 김광현이나 김현수 같은 선수를 생각해보자. 이들은 한국야구사 전체를 돌아봐도 손에 꼽는 재능들이다.

출처:오센

이런 선수들은 굳이 연령 제한이 없어도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대표팀에 승선한다. 이번 대회는 부상으로 승선이 불발됐지만, 이정후 같은 재능의 선수들에게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김광현, 김현수, 이정후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대표팀이 최선의 전력을 구축하는 방안은, 결국 기존의 방식처럼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축으로 하고 나머지 자리는 그 때 그 때 경기력 좋은 선수들로 채우는 것이다.

 

만약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팀들을 앞으로 다른 국제대회에서 마주쳐야한다면, 어린 선수들이 이들을 미리 만나는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시안게임 참가팀 중 다른 대회에서 만날 것으로 기대되는 팀은 대만 정도가 끝이다.

 

일본의 경우 아시안게임에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나서고 있으며, 다른 팀들의 경우 선수 선발 방식과 무관하게 다른 대회에서 한국을 위협할 전력이 되지 못한다. 결국 다른 대회를 앞두고 미리 만나보는 효과가 있는 것은 대만 하나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대회가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그간 야구계를 향했던 근거 없는 비난의 여론, 이른 바 ‘억까’가 펼쳐지기 딱 좋은 환경이 됐기 때문이다. KBO는 재정자립도나 흥행 면에서 국내 프로스포츠 중 최고 수준이지만 이상하리만큼 많은 비난에 직면하다.

 

비난의 의견을 내놓는 악플러들은 국제 대회 성적을 핑계 삼지만, 이들의 공격 방향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구시대적인 지도자들의 방만한 경기 운영과 선수 육성이 부진한 성적의 원인이 된 것은 무시하고, 오직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만 수준 이하의 비난을 쏟아낸다.

 

심지어 이런 악플러들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도 ‘프로가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승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이들의 의견대로면 한국야구계가 다른 국제대회에 나설 때는 태극마크의 무거움을 느끼고 좋은 성적을 꼬박 꼬박 거두면서도 아시안게임만큼은 갑자기 태극마크의 무거움을 경시하고 대회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야한다는 것이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뭐 어찌 됐든 이런 비난의 의견들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선수들은 인간이고 이러한 형태의 공격에 어쩔 수 없이 많은 상처를 받는다.

출처:연합뉴스

한 때는 오지환과 박해민, 그리고 특히 선동열 감독이 피해자가 되어 국정감사에까지 소환되는 비극이자 촌극이 벌어졌고, 강백호에 대한 가해는 현재 진행 중이다. 더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이번 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얻지 못한다면, 프로들이 나가서 아마추어들을 이기지 못했다는 심한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 KBO가 이러한 비난들로부터 어린 선수들을 보호할 대책을 마련해뒀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이 든다.

 

한국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부디 필자의 걱정이 기우가 될 수 있도록 야구 대표팀이 압도적인 경기력을 바탕으로 전승 거둬 금메달을 획득하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KBO가 연령 제한보다 더 실효성 있는 대표팀 전력 강화 방안을 강구하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