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의 주관을 많이 반영한 순위입니다.
이번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의 대표팀 경기력이 좋지 못해 국내 축구팬들의 우려가 큰 것으로 보인다. 필자 역시도 무능한 감독 아래에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 과거 태극 전사들이 월드컵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국민들을 자랑스럽게 했던 경기 10경기를 선정해 봤다. 이 글이 조금이나마 국내 축구팬들의 기분을 달랠 수 있기를 기원한다.
10위 1954년 스위스 월드컵 2조 조별리그 1차전 VS 헝가리
일시: 1954년 6월 17일 목요일 18시
장소: 하르트투름 슈타디온
경기 결과: 헝가리 9 : 0 대한민국
‘9점차 대패를 당한 경기가 왜 순위권에 있나’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기는 한국 축구사에 아주 큰 의미를 가지는, 바로 역사상 첫 월드컵 경기이며 경기력이라는 관점에서는 더 높은 순위를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경기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본 선수단 입국 반대로 대표팀은 월드컵 예선 2경기를 모두 일본에서 치러야 했다. 그러나 대표팀은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이겨내고 1차전을 5:1 승리, 2차전을 2:2 무승부로 마치면서 감격적인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따냈다.
하지만 본선 티켓을 따낸 대표팀 앞에는 더욱 험난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의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행정력 때문에 대표팀은 도쿄-방콕-콜카타-카라치-로마를 거쳐서야 취리히에, 그것도 선발 출전할 11명만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현지에 도착한 후에도 대표팀은 휴식을 취하며 시차에 적응할 새도 없이 본인들의 장비를 직접 정비하다가 경기에 나서야 했다. 그리고 대표팀을 기다리고 있는 상대는 그 유명한 푸스카스가 이끄는 축구 역사상 최강팀 중 하나, ‘매직마자르 군단’ 헝가리였다.
헝가리의 20점차 이상의 승리가 예상됐으나, 정신력으로 무장한 태극 전사들은 헝가리의 파상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냈다. 교체 선수가 없는 와중에 4명의 선수가 부상을 당해 7명으로 마칠 정도의 투혼을 보인 그들에게 0:9라는 스코어는 어마어마한 선전이었다.
경기 종료 후 홍덕영 골키퍼를 비롯한 대한민국 선수단은 현지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숙소에는 많은 선물이 도착했다고 한다. 3일 후 터키전은 뒤늦게 도착한 후보 선수들이 출장해 0:7로 패했고, 대한민국의 뜨거웠던 첫 월드컵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9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A조 조별리그 3차전 VS 이탈리아
일시: 1986년 6월 10일 화요일 12시
장소: 에스타디오 쿠아우테목
경기 결과: 이탈리아 3 : 2 대한민국
10위에 이어 9위 역시도 패한 경기를 선정했다. 10위에 선정된 경기와 마찬가지로 이 패배 역시 절대 부끄럽지 않은 결과였으며, 오히려 경기력만 놓고 봤을 때는 더 높은 순위를 받아도 무방하다.
1986년 월드컵에 나서는 대표팀은 최순호, 허정무, 박경훈, 정용환, 박창선, 김주성 등등 한국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쟁쟁한 명성의 선수들로 아시아 예선을 통과했고, 분데스리가에서 커리어의 말년을 보내던 차범근도 대회 본선에 합류했다.
대표팀은 1차전에서는 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만나 박창선이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득점을 터뜨렸으나 1:3으로 패했고, 2차전에서는 불가리아를 만나 1:1 무승부를 거두면서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승점을 기록했다.
나름의 선전을 펼친, 그러나 16강 진출은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표팀이 만나게 된 3차전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였다.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도 대표팀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전반 17분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대표팀은 이후 데이비드 소차 주심의 노골적인 편파 판정에 시달려야했다. 소차 주심은 전반 35분에는 혼자 넘어진 알토벨리를 보고 페널티킥을 선언했고, 항의하던 박경훈에게 오히려 경고를 주기까지 했다.
다행히 페널티킥은 실축이 됐고, 후반 17분 ‘이탈리아 킬러’ 최순호의 동점골이 터졌다. 이대로 끝나면 대한민국은 16강에 갈 수 있었지만 소차 주심은 그걸 원치 않았다. 계속된 오심 속에 알토벨리의 추가골과 조광래의 자책골로 스코어는 3:1로 벌어지고 말았다.
포기하지 않은 한국은 최순호의 어시스트로 허정무의 추격골을 만들어냈으나, 경기를 뒤집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고 결국 2:3으로 패하며 대회를 마무리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24개국 체제의 월드컵이라 조 3위를 기록한 팀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고, 이 경기에서 무승부만 거뒀다면 한국은 불가리아 대신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정상적인 심판이 주관하는 경기였으면 무승부 이상의 결과가 나올 확률이 대단히 높았을 것이다.
8위 1994년 미국 월드컵 C조 조별리그 3차전 VS 독일
일시: 1994년 6월 27일 월요일 15시
장소: 코튼 볼
결과: 독일 3 : 2 대한민국
10위 및 9위와 마찬가지로 8위 역시도 패한 경기를 선정했다. 역시나 앞의 순위에 선정된 경기들과 마찬가지로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하며, 더 높은 순위를 받았어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이다.
1차전 홍명보의 1골 1어시 대활약으로 스페인에 2:2 무승부를 거둔 한국은 2차전 볼리비아에게도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 2점을 확보했다. 이미 역대 최고 승점을 경신했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을 지울 수 없는 상황에서 만나게 된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었다.
1990년 발롱도르 로타어 마테우스, 2년 후 발롱도르를 받는 마티아스 잠머, 그리고 명단에 안드레아스 브레메와 올리버 칸 등등 포디움 수상자들도 즐비한 독일은 강력했다. 비극적이게도 훗날 대한민국 감독을 맡는 어떤 금발의 공격수의 선제골로 독일이 앞서갔다.
그리고 골키퍼 최인영의 연이은 실수가 나오며 경기는 순식간에 3:0까지 벌어졌다. 최인영은 이미 본인의 떨어진 기량을 인지하고 대표팀을 은퇴하기를 원했으나, 감독 김호의 강력한 요청으로 부득이하게 이 대회에 참가했고, 그것이 이런 안타까운 결과로 연결됐다.
결국 후반전을 앞두고 한국은 골키퍼를 이운재로 교체했고, 한국의 경기력은 완전히 달라졌다. 후반 7분 황선홍의 만회골이 터진데 이어, 후반 18분에는 홍명보의 초장거리 슈팅까지 골로 연결되며 순식간에 경기는 1점 차로 좁혀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약 30여분 동안 한국은 독일을 몰아붙였으나, 보도 일그너 골키퍼의 선방에 번번이 막히며 경기는 그대로 2:3으로 종료됐다. 이 날 멀티골을 넣은 금발의 독일 공격수는 ‘5분만 더 있었어도 역전을 당했을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축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김호 감독이 최인영의 국대 은퇴를 수락하고 이운재를 중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7위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B조 조별리그 1차전 VS 그리스
일시: 2010년 6월 12일 토요일 13시 30분
장소: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
경기 결과: 대한민국 2 : 0 그리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아마도 대표팀이 한국 축구팬들의 기대에 가장 잘 부응한 대회일 것이다(2002는 기대 이상). ‘양박쌍용’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라인업은 객관적으로 봐도 충분히 전력이 좋았고,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의 조 편성도 나름 평이했다.
그리고 그리스전은 대한민국의 월드컵 역사를 통틀어 가장 상대를 잘 압도한 경기이며, 동시에 한국 축구팬들이 가장 안심하고 볼 수 있었던 경기이기도 하다.
초반부터 상대를 몰아붙이던 대한민국은 6분 만에 세트피스에서 이정수의 선제골이 터지며 1:0 리드를 잡았다. 이후로도 전반 내내 상대를 몰아붙였고, 페널티킥 의심 장면도 2번을 만들어내는 등 경기를 완전히 지배했다.
후반 6분에는 ‘캡틴’ 박지성이 상대 실수를 틈타 추가골을 뽑아내며 스코어 차이를 벌리고 축구팬들을 안심시켰다. 이후로도 한국은 그리스를 압도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내용이었다.
이 승리를 바탕으로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원정 월드컵 토너먼트 라운드에 진출했으며, 16강에서는 우루과이를 만나 혈투를 펼쳤으나 아쉽게 1:2로 패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그럼에도 남아공 월드컵이 경기력과 결과를 모두 챙긴 만족스러운 대회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6위 2022년 카타르 월드컵 H조 조별리그 3차전 VS 포르투갈
일시: 2022년 12월 2일 18시
장소: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경기 결과: 대한민국 2 : 1 포르투갈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이후 한국은 파울루 벤투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벤투호는 초반에는 다소 답답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후 차츰 안정된 경기력을 보이며 다가오는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갔다.
우루과이와의 1차전 우수한 경기력으로 승점 1점을 챙긴 한국은 가나와의 2차전에서 패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식 이하의 판정을 보이던 앤서니 테일러 주심이 벤투 감독을 퇴장시켜 3차전을 감독 없이 치르게 됐다. 3차전 상대는 탑 시드 팀 포르투갈이었다.
한국 축구팬들의 기대가 무색하게 포르투갈이 전반 5분 만에 히카르두 오르타의 골로 앞서갔다. 이대로 16강의 꿈은 무참히 좌절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전반 27분 코너킥 상황에서 김영권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실수를 틈타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후 단 1골이 필요한 상황에서 후반 추가시간까지 한국은 포르투갈과 팽팽하게 맞섰다. 6분의 후반 추가시간이 주어졌고, 포르투갈의 코너킥을 김문환이 걷어낸 공이 이번 대회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캡틴’ 손흥민 앞에 떨어졌다. 손흥민은 그 공을 몰고 달리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의 페널티 박스 앞, 상대 선수들에게 둘러싸이고 마스크를 써 시야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손흥민이 절묘하게 넘긴 패스는 황희찬에게 연결됐고, 황희찬은 부상으로 1,2차전을 출전하지 못한 울분을 토해내듯 완벽한 마무리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포르투갈과의 경기는 승리로 마무리됐지만, 동시간대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 여전히 16강의 향방은 결정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우루과이의 추가골은 들어가지 않았고, 한국은 다득점에서 앞서 우루과이를 제치고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 브라질전은 분명 아쉬웠다. 그러나 벤투 감독과 선수들은 16강 진출이라는 유의미한 결과를 통해 증명했고, 그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5위 2018년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VS 독일
일시: 2018년 6월 27일 수요일 17시
장소: 카잔 아레나
경기 결과: 대한민국 2 : 0 독일
‘소리아가 없어서 졌다’는 망언을 일삼다 경질된 울리 슈틸리케의 뒤를 이은 신태용 감독은 빠르게 팀을 정비했다. 그러나 그 역시 한계가 있었고, 한국은 1차전 스웨덴에 패한 데 이어 멕시코와 2차전에서 VAR의 존재 이유가 궁금해지는 오심을 당하며 2패의 궁지에 몰렸다.
3차전 상대는 이미 1994년과 2002년에 우리의 앞길을 막아선 바 있는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었다. 마누엘 노이어, 마츠 훔멜스, 토니 크로스, 마르코 로이스, 토마스 뮐러 등등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즐비한 바로 그 독일 말이다. 신태용호에게는 일말의 희망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한국은 조현우와 김영권을 바탕으로 독일의 공격을 잘 막아냈고, 역습에서는 손흥민을 중심으로 위협적인 기회를 많이 창출했다. 승리가 반드시 필요했던 독일은 다급하게 공격을 이어갔지만 후반 추가시간이 되도록 골은 나오지 않았다.
후반 추가시간, 한국이 얻어낸 코너킥을 손흥민이 낮게 처리했고, 공은 혼전 끝에 골문 앞의 김영권 앞으로 굴러갔다. 김영권이 독일의 골망을 흔들었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야속한 오프사이드 깃발이었다. 그러나 리플레이 화면은 그 깃발이 틀렸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VOR실과 교신한 마크 가이거 주심은 온 필드 리뷰를 진행했고, 화면을 본 뒤 센터 서클을 가리키며 골을 선언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독일을 3번째 만난 끝에 처음으로 리드를 잡는 순간이었다.
2골이 필요해진 독일은 다급한 나머지 골키퍼 노이어까지 공격에 가담시켰다. 그러나 오히려 그 노이어가 실수를 범하며 주세종에게 공을 내줬고, 주세종의 롱킥을 손흥민이 마지막힘을 짜내어 골로 연결해 독일의 탈락에 쐐기를 박았다.
아쉽게도 경우의 수가 우리 편이 아니었기에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잡아낸 것은 분명 큰 성과였다. 이 경기를 바탕으로 다시 국내에는 축구 인기가 무르익었고,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은 못 이룬 16강의 꿈을 4년 뒤에 이룰 수 있었다.
4위 2002년 한일 월드컵 D조 조별리그 1차전 VS 폴란드
일시: 2002년 6월 4일 20시 30분
장소: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경기 결과: 대한민국 2 : 0 폴란드
2001년 1월 1일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히딩크는 대표팀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놨고, 합숙훈련까지 하며 월드컵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결과를 받아 들 시간, 결전의 장소는 부산이었다.
경기 초반에는 폴란드의 공세에 실점 위기도 있었지만 한국은 홍명보의 중거리 슛을 바탕으로 분위기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반 26분 이을용의 크로스를 황선홍이 발리슛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후반 초반에도 한국은 좋은 경기력을 이어갔고, 후반 8분, SBS의 송재익 캐스터가 첫 승에 대한 기대감을 말하던 바로 그때, 유상철이 중거리 슈팅으로 추가골을 터뜨렸다. 남은 40여분의 시간은 득점 없이 흘러갔고 그대로 경기가 종료됐다.
이렇게 한국 축구는 1954년 헝가리전 0:9 패배를 시작으로 48년 동안 5개 대회, 14경기에서 4무 10패를 기록한 끝에야 감격적인 월드컵 첫 승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3위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 VS 스페인
일시: 2002년 6월 22일 15시 30분
장소: 광주월드컵경기장
경기 결과: 한국 0 : 0 스페인 ( 5 : 3 PSO )
16강에서 이탈리아와 연장 혈투를 펼친 대한민국의 8강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당시의 스페인은 이케르 카시야스, 페르난도 이에로, 카를레스 푸욜, 차비 에르난데스, 라울 곤살레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등등 2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쟁쟁한 선수들이 많은 강팀이었다.
경기는 내내 스페인의 근소 우세로 흘러갔다. 스페인의 거친 반칙에 김남일이 부상을 당했고, 포백을 보호할 선수가 사라지며 한국 수비진은 스페인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됐다. 당시 21살의 신예 호아킨 산체스는 한국의 측면을 마구 휘젓고 다녔다.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흘렀고, 박지성, 이에로, 차비 등 양 팀의 여러 키커들이 모두 성공시킨 가운데 스페인의 4번째 키커로 경기 내내 최고의 활약을 보인 호아킨이 나섰다. 호아킨이 망설이다 찬 슛은 이운재에게 완벽하게 읽혔고, 이운재는 이 공을 막아내고 환하게 웃었다.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5번 키커는 홍명보였고, 홍명보는 침착하게 킥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커리어 내내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던 홍명보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밝은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내달렸다.
이 경기를 통해서 한국은 지금껏 밟아본 적이 없는, 그리고 아직까지도 다시 밟지 못한 월드컵 4강이라는 꿈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마 한국 축구팬들은 이 날 이운재와 홍명보의 미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간혹 이 경기를 두고 한국이 판정에서 이득을 봤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안정환이 페널티 박스에서 스페인 선수의 팔꿈치에 맞아 넘어지기도 하는 등, 판정으로 손해를 봤으면 봤지, 이득을 본 경기라고 하기는 힘들다.
2위 2002년 한일 월드컵 D조 조별리그 3차전 VS 포르투갈
일시: 2002년 6월 14일 20시 30분
장소: 인천문학경기장
경기 결과: 대한민국 1 : 0 포르투갈
폴란드와의 경기를 승리로 마친 한국은 미국전에서 연달아 좋은 찬스를 놓치며 무승부를 거뒀다. 결국 16강 진출을 확정 짓지 못한 상황에서 만나게 된 상대는 조 최강 포르투갈이었다. 자칫 패하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포르투갈은 거친 반칙으로 일관했다. 전반 27분 주앙 핀투가 박지성에게 양발로 거친 태클을 걸며 다이렉트 퇴장을 당했고, 후반 21분에는 베투가 이영표를 넘어뜨리며 경고 누적 퇴장을 당했다. 포르투갈에게도 2명의 수적 열세는 극복이 불가능했다.
후반 25분, 이영표의 크로스를 박지성이 가슴으로 컨트롤한 뒤 그림 같은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했다. 대한민국의 사상 첫 월드컵 토너먼트 단계 진출이 사실상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격한 포옹을 했다.
포르투갈은 9명으로도 강력했고, 남은 시간 동안 피구를 중심으로 파상 공세를 펼쳤다. 비겨도 조 1위가 확정되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은 실점을 원치 않았다. 골키퍼 비토르 바이아까지 가담한 포르투갈의 마지막 코너킥도 막아냈고, 결국 2승 1무로 조 1위 진출을 확정했다.
1위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VS 이탈리아
일시: 2002년 6월 18일 20시 30분
장소: 대전월드컵경기장
경기 결과: 대한민국 2 : 1 이탈리아
파죽지세로 16강에 진출한 대한민국, 하지만 16강 상대는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잔루이지 부폰,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크리스티안 비에리, 프란체스코 토티 등 동 포지션 당대 최고들은 물론, 역대 최고를 노리는 선수들까지 있는 강팀이었다.
전반전 한국에겐 악재가 겹쳤다. 4분 만에 얻어낸 페널티킥은 안정환이 실축했고, 7분에는 비에리의 팔꿈치에 맞아 김태영의 코뼈가 부러졌으나 비에리는 퇴장은커녕 경고도 받지 않았다. 결국 18분에는 경기장에 있어서는 안 됐던 비에리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이탈리아의 거친 반칙은 계속됐다. 전반 22분 토티가 또 팔꿈치를 사용하자 주장 홍명보가 강력하게 항의했고, 그제야 주심은 마지못해 퇴장이 아닌 경고를 꺼냈다. 11명과 9명, 0:0으로 진행됐어야 할 경기는 11명과 11명, 0:1의 불공정한 상황으로 계속됐다.
후반전 15분을 넘어서도 한국의 동점골은 나오지 않았고, 히딩크는 도박을 결심했다. 김태영, 김남일, 홍명보 등 수비적인 자원을 빼는 대신,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 등 공격적인 자원을 대거 투입하며 공격 일변도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 전술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후반 43분, 황선홍이 띄워준 공이 파누치의 팔에 맞고 설기현 앞에 떨어졌고,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하려는 찰나에 설기현이 왼발슈팅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렇게 경기는 연장으로 향했다.
연장 전반 13분, 정규시간에 퇴장당했어야 할 토티가 드디어 할리우드 액션으로 경고 누적 퇴장을 당했다. 한국은 진작 받았어야 할 수적 우위를 그제야 받았고, 이탈리아를 더욱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연장 후반 12분, 슬슬 사람들의 머리에 승부차기가 떠오를 무렵 좌측면에서 이천수가 이영표에게 패스를 건넸다. 이영표는 그대로 크로스를 올렸고, 말디니와의 경합에서 이긴 안정환의 헤더는 부폰의 손을 피해 이탈리아의 골문을 흔들었다.
페널티 실축으로 경기 내내 부담을 안고 뛰었던 안정환은 그제서야 환하게 웃으며 트레이드 마크인 반지 세리머니를 작렬했고, 골든골 제도에 따라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다. 승장 히딩크는 시원한 어퍼컷을 내질렀다.
이 경기는 아직까지도 유일한 대한민국의 월드컵 토너먼트 승리이며, 세계 최강의 수비력을 자랑하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한 역전승이기에 더욱 값졌고, 16년 전의 억울한 패배를 마침내 설욕한 경기이기도 하다.
10경기만 추리느라 빠진 경기가 많지만, 태극전사들이 월드컵의 그 어떤 경기도 허투루 뛰지 않았음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무능한 지도자들 만난 국가대표 선수들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가장 필요한 것은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우리 선수들이 개개인의 우수한 능력으로 이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이 리스트를 다시 작성할 때는 순위표 최상단에 결승전 승리가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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