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언급된 war은 개편 이전 스탯티즈의 자료입니다.
*필자의 주관을 많이 반영했습니다.
이종범과 양준혁은 모두 한국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레전드로 평가받으며, 팬들에게 '양神'과 '종범神'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은 바 있다. 둘은 1993년 같은 해에 데뷔해 오랜 기간 활약하며 수많은 기록들을 남겼다.
자연히 둘을 비교하는 경우도 자주 나오는데, 대부분 KBO에서 압도적인 누적 성적을 기록한 양준혁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둘 중 더 위대한 선수는 양준혁이 아닌 이종범이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하겠다.
1. 전성기
선수 평가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는 전성기의 활약상은 확실히 이종범이 양준혁보다 한 수 위였다. 타격은 양준혁이 근소 우위였지만, 양준혁은 수비 부담이 적은 포지션을 맡았고, 이종범은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를 소화했기에 이종범이 양준혁보다 가치 있는 선수였다.
개편 이전 statiz war 기준 양준혁이 가장 좋은 활약을 보인 시즌은 1996년으로 war 8.56을 기록했는데, 같은 시즌 이종범은 9.51로 양준혁에 비해 약 1 가량 높은 war을 기록했다. 단일 시즌 기준으로 war 1이면 꽤 유의미한 차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종범은 1997년에는 9.70, 그리고 1994년에는 11.76이라는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방위병 복무로 홈경기만 뛴 1995년에도 5.03을 기록했다. 커리어 하이 시즌 기준으로 war이 3 가량 차이면 전성기끼리의 비교에서 아주 큰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종범이 이러한 기량을 1994년부터 적어도 1997년까지 최소 4년 동안은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종범의 전성기를 플루크로 볼 여지도 없다. 확실히 전성기 기준으로는 이종범이 양준혁보다 더 나은 선수였다.
2. 누적
KBO 한정의 누적 성적의 관점에서는 양준혁이 이종범보다 우위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종범이 전성기에 가까운 나이에 NPB 진출을 경험했다는 것 역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둘의 선수 커리어 전체를 온전히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준혁의 누적 war은 87.22, 이종범의 누적 war은 67.74로 약 20 가량의 차이가 나며 절대 작은 차이는 아니다. 하지만 이종범이 일본 진출 전후로 기록했던 성적을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종범의 NPB 진출은 1998년에서 2001년 중반까지, 나이로 만 27세에서 만 30세 사이의 약 3년 반 정도였다. 분명 전성기에 준하는 나이이며, 상술했듯이 직전 2년 동안 이종범은 9 가량의 war을 기록했고, 복귀 이듬해부터는 2년 간 5.2, 7.1의 war을 기록했다.
이 기간의 이종범의 누적 성적을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지는 사람에 따라서 생각이 많이 다를 수 있다. 단순히 KBO 유격수 시절의 어마무시한 war 페이스였다고 생각하면 양준혁을 넘고도 남겠지만, 일본에서 부상이나 부진도 있었으니 이걸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뭐 정확하게 둘의 누적 성적 차이가 어느 정도다 하고 결론 내리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기존 스탯티즈 war의 20 가량보다는 훨씬 좁혀진 차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누적은 살짝 밀리지만 전성기가 월등한 이종범이 위다’라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생긴다.
3. 수비
개편 이전 스탯티즈는 2014년 이후부터 세부 수비 지표만 제공했다. 즉 각각 2010년과 2012년에 은퇴한 양준혁과 이종범의 war 에는 수비 퍼포먼스로 인해 팀에 기여한 정도(포지션 가중치 아님)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여러 남아있는 영상 자료나 세간의 평가, 묘사 등을 고려했을 때, 양준혁은 외야수로나 1루수로나 리그 평균 이상의 수비수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보인다. 커리어 내내 지명타자를 겸업한 것도 이를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반면 이종범은 유격수로나 외야수로나 평균 이상의 수비수였다고 보인다. 특히 유격수 시절 수비력의 경우 보는 관점에 따라 리그 정상급으로 볼 여지도 있다. 물론 이 영역은 필자의 주관이 많이 반영될 수 있는 부분인 것 또한 사실이다.
어찌 됐든 누적의 관점에서 수비까지 고려한다면 양준혁과 이종범의 격차는 더 좁혀진다고 봐야 옳다. NPB 커리어와 수비력을 모두 감안하면 누적의 차원에서도 이종범> 양준혁이라고 주장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4. 대표팀 활약
대표팀에서의 활약상 역시 이종범이 양준혁보다 크게 우세하다. 양준혁이 협회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국대를 안 뽑혔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라고 봐야할 것이다.
우선 1982년 세계선수권 이후 다시 한국이 최적에 가까운 전력을 꾸려 출전한 것은 1998년 아시안게임부터이며 이 둘의 국대 커리어도 이 이후를 기준으로 언급하겠다. 둘 다 대학 시절 다른 대회들에 뽑힌 적이 있으나 기록 및 대회의 수준이 불분명하여 제외하겠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은 미필 위주의 선발을 단행했고, 군필이던 둘은 뽑히지 않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국내파만 선발해서 이종범은 제외됐고, 양준혁은 국내에 있었지만 선발되지 않았다.
그나마 양준혁 입장에서 뽑히지 않아 억울할만한 대회가 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인데, 이 시드니 올림픽에서 양준혁과 비슷한 포지션(지타, 코너 외야, 1루)을 차지한 선수는 이승엽과 김기태, 장성호였다.
시드니 올림픽은 2000년 9월에 있었고 그 해 시즌 전체 성적을 보면(이 당시에 세이버 스탯이 있었을 리가 없으니 클래식 스탯 위주로만 언급함)
이승엽: 타율 0.293 133안타 36홈런 95타점
장성호: 타율 0.324 146안타 14홈런 48타점
김기태: 타율 0.309 103안타 26홈런 80타점
양준혁: 타율 0.313 135안타 15홈런 92타점
양준혁 입장에선 안 뽑힌 게 억울할 수 있지만, 양준혁 대신 저 셋을 데려간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고 물으면 필자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애초에 국내파로만 구성해 이종범은 포함될 수 없었던 대회이니 이종범과의 비교에서는 형평성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후 2002 아시안게임과 2006 WBC에서 모두 이종범만 선발됐고, 양준혁은 선발되지 않았는데 직전 시즌 성적과 플레이 스타일을 감안하면 충분히 타당했다고 보인다. 참고로 2002 아시안게임은 그 해 10월에, 2006 WBC는 그 해 3월에 열렸다.
2002년 시즌 전체 성적
이종범: 타율 0.293 142안타 18홈런 59타점 35도루
양준혁: 타율 0.276 108안타 14홈런 50타점 2도루
2005년 성적
이종범: 타율 0.312 134안타 6홈런 36타점 28도루
양준혁: 타율 0.261 103안타 13홈런 50타점 10도루
성적부터 이종범이 우세했고, 이종범은 외야 세 포지션(특히 중견수)을 다 준수하게 소화 가능한 데다가 유사시에는 3루나 유격도 소화가 가능한 반면, 양준혁은 코너 외야나 1루만 간신히 소화할 수 있었으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탁이었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 두 대회에서 이종범의 활약은 엄청났다.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는 3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했고, 2006년 WBC에서는 아예 켄 그리피 주니어, 스즈키 이치로와 함께 대회 올스타 외야수로 뽑힐 정도였다.
뭐 이종범의 국대 성적이 표본이 많지는 않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서 충분히 가산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라고 판단해 이번 비교에서도 이를 어느 정도 반영했다.
요약하자면 전성기를 기준으로는 확실히 이종범이 더 우수한 선수였고, 누적 성적은 양준혁이 앞선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종범의 NPB 커리어와 둘의 수비력을 고려하면 큰 차이라 하기 어렵고, 대표팀에서 남긴 업적 또한 이종범이 더 많다.
종합하면,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종범이 양준혁보다 더 위대한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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