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5월 18일) 새벽에 열린 챔스 4강 2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맨체스터 시티에게 0-4로 패하며 합산 스코어 1-5로 밀려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토니 크로스를 레지스타로 기용하는 방안을 들고 나왔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실 안첼로티 감독이 이러한 전술을 쓴 것은 처음이 아니다. 과거 AC밀란 시절 안첼로티 감독은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던 안드레아 피를로를 레지스타로 쓰면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피를로와 크로스는 모두 축구 지능이 매우 뛰어나며 아주 우수한 킥력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비슷한 유형의 두 선수 중 왜 피를로만 레지스타 자리에서 성공을 거두고 크로스는 실패했을까?
레지스타는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플레이메이커 롤을 부여받은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플레이메이커에게 최우선으로 요구되는 역량은 당연히 경기 조율 능력이지만, 레지스타는 ‘수비형’ 미드필더이니 당연히 수비력 또한 갖춰야 한다.
피를로의 경우 경기 조율 능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지만, 수비력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피를로가 가진 수비적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안첼로티 감독이 기용한 선수가 바로 젠나로 가투소이다.
가투소는 동시대 수비형 미드필더들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는 뛰어난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고, 수비형 미드필더 피를로의 오른쪽에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되며 수비적인 커버를 담당했다.
그러니까 포메이션 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위치한 것은 피를로였지만 실질적으로 수비에 더 많이 기여한 선수는 가투소였던 것이다. 이 둘의 조합은 매우 좋았고, 둘은 밀란과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모두 핵심적인 듀오로 활약했다.
물론 피를로가 커리어 내내 가투소와 함께했던 것은 아니다. 2011년 피를로가 밀란을 떠나 유벤투스에 입단할 때 가투소는 밀란에 남았다.
하지만 피를로는 유벤투스에서도 3년 연속 리그 MVP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가투소는 없었지만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와 아르투르 비달이라는 또 다른 준수한 중원 파트너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키시오나 비달 역시도 가투소만큼은 아니지만 뛰어난 수비력에 더해 많은 활동량을 보이는 선수였고, 이들의 보좌를 받은 피를로는 유벤투스에서도 제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이번 챔스 4강 2차전 레알의 중원 라인업을 살펴보자. 레알은 크로스를 수비형 미드필더에 두고 왼쪽에는 모드리치, 오른쪽의 발베르데의 2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기용했다.
모드리치의 경우 위상만 놓고 봤을 땐 위에 나온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위대한 미드필더지만, 수비력이 특출난 선수는 아니다. 발베르데도 경기장에서 많은 활동량을 보여주긴 하지만 역시나 수비에 특화된 선수라고 보기는 힘들다.
크로스는 중앙 미드필더 자리를 기준으로 했을 때 그렇게 수비력이 부족한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기준으로 했을 때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모드리치와 발베르데를 파트너로 두고 크로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한 것은 완전한 패착이었다.
토니 크로스를 맨시티와 같은 최상위권 레벨의 클럽을 상대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할 생각이었다면, 적어도 은골로 캉테처럼 수비적으로 아주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를 파트너로 세웠어야 한다.
물론 이번 시즌 첼시나 바르셀로나를 상대한 경기에서는 해당 중원 조합으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을 기준으로 했을 때 첼시나 바르셀로나가 맨시티만큼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는 팀은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다.
10여 년 이상을 레지스타에서 정상급 기량을 보인 피를로의 사례와 다르게 크로스를 레지스타로 기용한 이번 시즌 안첼로티의 시도는 실패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크로스의 실패라기 보다는 안첼로티의 실패에 가깝다.
교수님이라는 별명으로 대표되는 크로스의 축구 지능과 패싱력을 고려했을 때, 크로스 역시도 적절한 파트너만 있었다면 레지스타 자리에서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제는 크로스의 전성기가 지났기에 이러한 가정은 다소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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