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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쿠오 바디스, 첼시

by 마드리드의 거인 2023. 5. 5.

쿠오 바디스(Quo Vadis)는 라틴어로 “어디로 가시나요?”를 의미하는 문장으로, 성경과 소설 및 영화 등에서 사용되면서 유명해졌다. 필자는 현재 첼시를 보면 딱 이런 생각이 든다. 첼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한국시각 5월 3일 4시에 열린 첼시와 아스날의 PL 34라운드 경기에서 첼시가 1-3으로 패했다. 경기 시작 전 아스날은 2위, 첼시는 12위로 두 팀의 순위는 무려 10계단 차이가 났으며, 이 경기 승리로 아스날은 잠시나마 1위로 올라서며 순위 차를 한 단계 더 벌렸다.

 

첼시는 최근 열린 9번의 공식경기에서 승리가 없으며, 6번의 공식경기에서 모두 패했다. 최근 9경기에서 첼시는 4득점 14실점을 기록했으며, 6경기에서는 2득점 12실점을 기록했다. 부진한 성적 때문에 전임 그레이엄 포터 감독을 떠나보내고 프랭크 램파드를 임시 감독으로 선임했지만, 그 램파드가 부임한 이후 모든 경기에서 패한 것이다.

심각한 첼시의 최근 9경기 성적(이미지 출처: 풋몹)

물론 램파드 감독의 역량 문제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런 상황에서 램파드를 선임한 첼시 보드진을 비판하고 싶다. 첼시는 램파드와 구단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더 나아가서 램파드의 역량을 생각해서라도 그를 임시감독으로 선임하면 안됐다.

 

첼시는 램파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램파드는 19/20시즌 첼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부임해 팀을 챔피언스리그로 이끌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며 리그 9위까지 쳐졌고, 첼시는 그를 경질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 시절 오래 머물렀던 팀에서 경질되는 것은 분명 램파드에게 큰 상처였을 것이다. 이 점을 알았다면 첼시는 이번 시즌 리그 11위까지 쳐진 어려운 상황에서 램파드를 다시 선임해서는 안됐다.

 

또한 첼시는 램파드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았다. 첼시에서의 부진으로 경질된 뒤 램파드는 에버튼의 감독을 맡았고 또 다시 부진에 빠졌다. 결국 램파드는 두 번째 시즌을 채 마치지 못하고 또 다시 경질을 겪어야 했다.

 

냉정히 말해 램파드는 이번 시즌 첼시 같은 어려운 상황의 팀을 구할 역량이 없었으나, 첼시 보드진은 이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덕분에 첼시의 레전드인 램파드는 또 다시 팬들의 비판과 조롱에 직면하게 됐다.

첼시를 구해내지 못하고 있는 램파드 감독

비단 램파드의 선임뿐만 아니라, 그냥 이번 시즌 첼시가 보여준 행보들은 대부분 의문을 자아냈다. 지난 여름이적시장에서 첼시는 스털링, 쿨리발리, 쿠쿠렐라, 추쿠에메카, 포파나, 오바메양 등을 영입하며 약 4000억에 달하는 금액을 사용했다.

 

쿨리발리는 1991년생, 오바메양은 1989년생으로 적지 않은 나이이며, 스털링은 맨시티에서 결정력의 부재와 전반적인 경기력 하락, 큰 경기에서의 극심한 부진 등으로 이미 한계를 충분히 드러낸 선수이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쿨리발리와 오바메양은 부상과 부진으로 각각 리그 22경기와 15경기 출장에 그치고 있다. 스털링은 24경기에서 4골 2어시스트만을 기록했고, 빅6을 상대한 7경기에서 단 1어시스트만을 기록하며 맨시티 시절의 한계를 전혀 극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셋의 영입은 현 시점에서는 실패에 가까워보인다.

 

겨울이적시장에는 바디아실과 무드릭, 마두에케와 엔조 등의 유망주들을 주로 수집하며 여름보다 더 많은 약 5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사용했다. 이 중 꾸준히 주전으로 나서며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는 이미 월드컵에서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하고 잠재력을 증명한 엔조 하나가 끝이다.

 

물론 유망주들의 경우 영입의 성패를 단기간에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첼시의 영입 기조는 정상적이라고 보기 힘들며, 토드 보헬리 구단주가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의 방식과도 차이가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장기계약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이다. 리그 탑클래스의 선수를 영입할 때 악성 계약이 될 것을 감수하고 다른 팀과의 영입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 혹은 이미 구단 소속인 최상급 유망주들을 장기간 팀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

 

첼시의 경우는 두 가지 중 그 어느 케이스에도 해당되는 선수가 없다. 여름에 영입한 베테랑들은 리그 탑클래스의 기량은 보여주지 못한 채 악성 계약으로만 남을 것이 유력하며, 엔조를 제외한 겨울에 영입한 유망주들은 이렇게 성급하게 영입했어야 하는 이유를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무드릭과 스털링

또한 첼시가 감독을 경질한 타이밍을 생각한다면 이적시장에서의 영입 기조는 더욱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첼시는 시즌이 시작하고 무려 6경기 만에 토마스 투헬 감독을 경질했다. 투헬 감독과 이렇게 빨리 작별할 계획이었다면 처분하기 힘든 고 주급 베테랑들을 영입해서는 안됐다. 이렇게 갑자기 명분이 부족한 경질을 할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아예 시즌 전에 투헬을 떠나보내고 새 감독과 이적시장을 보냈어야했다.

 

겨울 이적시장의 행보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첼시가 월드컵 브레이크 이전까지 8위까지 쳐져있던 것을 감안하면 첼시는 오히려 겨울에 즉시 전력감으로 쓸 자원을 데려왔어야 한다. 그러나 첼시가 겨울에 영입한 9명 중 즉전감의 선수는 잘 쳐줘야 엔조와 펠릭스 둘이다.

 

또한 펠릭스는 이미 첼시에 숫자가 충분히 많던 2선 자원이다. 첼시에게 필요했던 것은 2선 자원이 아니라 골을 넣어줄 스트라이커 자원이었다. 결국 첼시의 겨울 영입생들은 대부분 즉각적인 전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첼시는 순위가 두 자리대로 떨어지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여기서 포터를 경질하는 시점 역시도 매우 좋지 못했다. 포터를 시즌 중에 경질할 생각이었다면 유럽대항전의 가능성이 남아있을 때 했어야 했다. 혹은 이번 시즌 동안 포터 체제를 유지하기라도 했다면 최소한 램파드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됐다.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경질된 포터 감독

그러나 첼시는 이도저도 아닌 최악의 타이밍에 포터를 경질했고, 결국 남은 시즌을 그 어떠한 동기부여도 없이 운영하면서 구단 레전드 램파드를 비난의 화살 앞에 노출시키고 있다.

 

물론 첼시가 현 상황을 바로 잡을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램파드의 뒤를 이을 제대로 된 정식감독을 선임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첼시의 다음 감독은 포체티노가 유력하다. 포체티노가 파리 생제르맹에서 실패를 겪었던 것을 감안했을 때 첼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첼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첼시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