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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축구마저 더럽힌 디에고 마라도나

by 마드리드의 거인 2023. 4. 8.

디에고 마라도나는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량을 가졌던 선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펠레와 메시를 제쳐두고 그를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선정하는 언론들도 심심찮게 보이곤 한다. 확실히 기량적인 측면에서만 놓고 봤을 때 마라도나는 이렇다 할 약점이 없는 선수였다.

 

그러나 그라운드에서의 뛰어난 기량과는 별개로, 경기장 밖에서 마라도나는 많은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마라도나가 경기장에서는 최고의 플레이를 이어나갔기에, 혹자는 마라도나를 ‘그래도 축구만큼은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필자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고자 한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그 축구마저도 더럽힌 사람’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는 도핑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고 결국 대회에서 퇴출되는 중징계를 받았다. 마라도나 본인은 감기약을 먹은 것뿐이라 항변했지만, 도핑 테스트를 담당하는 의사는 검출된 약물이 모두 사용되는 치료제는 없다고 말하며 해당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마라도나의 도핑 적발을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

사실 마라도나가 약물로 논란이 된 것 1994년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마라도나는 나폴리 시절 코카인 복용이 적발되어 쓸쓸하게 팀을 떠나야 했던 전적이 있다. 그러나 우선 필자가 마라도나의 코카인 복용을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둔다. 코카인은 단순 쾌락을 위한 마약일 뿐, 경기력에 도움이 되는 약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코카인 복용을 가지고 ‘인간 마라도나’의 성품을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축구선수 마라도나’를 평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하지만 1994년에 적발된 약물들은 명백한 PED(Performance Enhancing Drugs)다. 경기장 밖에서의 쾌락이 아닌 경기장 안에서의 퍼포먼스를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부분은 ‘축구선수 마라도나’를 평가할 때 매우 크게 반영되어야 한다.

 

마라도나 이전에 활약한 레전드들도 약물을 사용했다는 주장들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금지약물 규정이 명확하게 설립되기 전이었다. 당대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죄를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필자가 아는 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광범위하게 거론되는 다른 선수들은 공식적인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된 적은 없다.

아이러니한 사진. 그러나 플라티니조차도 선수로 뛰는 동안 축구를 더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디에고 마라도나는 다른 대회도 아닌 월드컵에서, 쾌락을 위한 마약이나 치료 목적의 약물이 아닌, 경기력 향상을 위한 약물이 도핑 테스트를 통해 검출됐기 때문에 그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

 

물론 마라도나가 전성기 당시에는 도핑 검사에 적발된 적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전성기 당시에는 금지약물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성기 시절의 퍼포먼스마저도 의심스럽게 만든 것은 마라도나 본인이다. 애초에 마라도나가 1994년의 도핑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했더라면 필자가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마라도나의 도핑 복용 시기가 전성기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라도나의 전성기도 마라도나의 커리어에 포함되지만, 마라도나의 도핑이 적발된 말년 시기 역시 마라도나의 커리어에 포함이 되기 때문이다. 복용시기와 관계없이 커리어 도중에 페어플레이 정신을 위반하고 금지약물에 손을 댄 그 자체가 매우 심각한 결격사유다.

 

축구선수를 평가하는데 도덕성까지 고려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디에고 마라도나가 경기장밖에서 코카인을 한 것은 필자가 마라도나를 평가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경기장 안에서의 퍼포먼스를 위해 도핑을 한 것은 분명히 축구선수를 평가하는데 반영되어야 하며, 아주 심각한 감점사유가 되어야 한다.

 

요즘 흔히 사용되는 유행어 ‘GOAT’는 ‘Greatest of all time’의 줄임말이다.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도가 된다. 마라도나를 GOAT 논쟁에 포함시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심각하게 부정한 방법을 통해 경기력을 향상하고자 한 선수를 어떻게 위대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굳이 필자에게 디에고 마라도나가 어느 정도로 위대한 선수인가를 묻는다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 아래, 승부조작을 시도한 선수들보다는 위로 놓을 것이다.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은 기량이 부족한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결격사유다. 페어플레이 정신을 위반한 부분에서 이미 마라도나의 업적들은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물론 마라도나가 고인이 됐기에 더 이상 사건사고를 일으킬 수 없고, 지금보다 그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미미한 의견과는 관계없이 마라도나는 축구계 레전드로 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 유력하다. 그러나 지적할 부분은 지적하고 가야 한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축구마저 더럽히고 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인물이며 더 이상 칭송받아서는 안 된다.